“생활 속에서 깨닫는 인문학이 필요하죠”
“생활 속에서 깨닫는 인문학이 필요하죠”
  • 서용석 책전문기자
  • 승인 2008.07.15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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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은깊다> 전우용 교수



[북데일리] 옛말 중 “사내아이가 마당에서 똥 누다가 개에게 불알 따먹히면 그 아이를 내시로 들인다”는 속설이 있다. 왜 이런 말이 생겼을까? 이야기 즉 이렇다. 조선시대엔 하수처리가 지금 같지 않았다. 길에서 볼 일을 봐야했고 그 오물처리는 개에게 맡겼다. 정말 그러다 이런 불상사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흥미로운 얘기다.

이 구수한 이야기는 전우용 교수의 <서울은 깊다>(돌베개. 2008)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똥개’로 시작되는 이 스토리는 조선시대와 현재를 넘나들며 하수와 하천의 역사를 설명해 준다. 흥미로운 줄거리와 생동감 있는 사진을 보다보면 절로 그 시절이 눈앞에 떠오른다. 저자 전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역사와 인문학의 필요성을 꼼꼼히 살펴봤다.

- 혹자는 촛불세대에게 인문학이 희망을 줄 때라고 했다. 촛불세대와 인문학, 어떤 이음구조가 있나.

“인문학이란 말 그대로 ‘사람’과 ‘문화’에 대한 학문이다. 인문학은 그 중에서도 신뢰, 사랑, 연대, 희망, 반발, 저항 등 계량할 수 없는 것, 상품화하기 어려운 것들을 주로 다룬다. 과거의 인문학이 ‘교양인’을 위한 학문이었다면 현대, 그리고 앞으로의 인문학은 ‘모든 사람’을 위한 학문이어야 한다. 오늘날 ‘촛불세대’의 소통은 단방향이 아니라 다방향이며,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 수평적 구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만큼 이들이 접하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다.

그러나 그 부작용으로 정보들을 종합하고 정리하는 능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이들이 주체적이고 의식적으로 정보들을 취사선택하고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앞으로 인문학이 할 일이다.

인문학이 ‘촛불세대’에 희망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줌으로써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될 이다. 인문학자들 역시 스스로 그 점을 고민할 때다.”

- 역사와 인문학 공부,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중요한 것은 개별 사건이나 인물, 유적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들을 꿰는 통찰력이다. 인문학 공부가 아니라 통찰력을 키우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사는 본래 ‘대화’라는 뜻이었다. 다른 생각, 다른 의견을 듣는 방법, 의견의 차이를 인식하는 방법, 서로 조정하고 정리해 새로운 의견을 도출하는 방법, 이런 것들을 생활 속에서 깨닫도록 하는 것이 인문학 공부를 시키는 첫 걸음이다.” 

-  요즘 초등생들 사이에선 현장학습이 유행이다. 현장학습으로 좋은 장소는 어떤 곳이 있나.

“자국 역사와 자국 문화는 한국인의 ‘김치’ 같은 것이다. 김치를 좋아하는 어린아이는 많지 않지만 자라면서 저절로 그 맛에 익숙해져 나중에는 김치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역사의 현장이란 그렇게 자주 접하면서 친해지는 곳이 되어야 한다. 집이나 학교 가까운 곳이면 어디나 현장 학습의 장이 될 수 있다.

다만 현장 안내 도우미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먼저 현장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여러 경로를 통해 수집하고, 그를 정리하는 학습을 한 후에 현장에 나가야 한다. 책, 인터넷, 부모, 현지 상점주인 등이 모두 정보원이 될 수 있다. 현장 학습 교육의 경험이 두터운 나라들의 교육에서 ‘현장’은 사전 조사 결과를 평가하는 기준일 뿐이다”

- 인문학을 통해, 폭넓은 연계학습이 가능 할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어떤 노력을 통해 교육 준비를 해야 할까.

“분과학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사물과 사건을 규정하는 여러 요인을 통합적으로 보려는 시도는 학제간 연구로 나타나기도 했고 아예 ‘통섭(通攝)’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학자의 한 사람으로 개인 의견을 말하자면 ‘통섭’이든 ‘학제 간 연구’든 역사학과 철학 등의 인문학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인문학은 ‘인식 대상’이 아니라 ‘인식 주체’를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유달리 강조되는 실용교육에는 우려가 크다. 이건 기업의 요구에 따르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는 부당한 전제에 서 있는 것이고, 그런 만큼 어린 세대의 삶을 오도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현장에서 인문학이 암기 과목이라는 엉뚱한 누명을 뒤집어쓴 지 오래된 상황에서 먼저 할 일은 암기의 인문학이 아닌 ‘창의의 인문학’으로 방향을 바꾸는 일일 것이다. 즉 지금 필요한 것은 ‘인문’ 과목을 개선하는 일이 아니라 모든 과목에 인문학적 소양을 덧붙이는 일이다.” 

- 읽어 볼만한 역사인문학 도서가 있다면.

“꼭 읽어야 할 책보다는 주의해서 읽어야 할 책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요즈음 수없이 출간되는 역사 관련 책들은 전문 역사학자가 쓴 것보다 비전공자들이 쓴 책이 더 많다. 책을 선택하기 전에, ‘믿을 만한’ 사람이 쓴 것인지를 먼저 살폈으면 한다. 자칫 재미와 흥미에 끌려 의미를 잃어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수박껍데기를 팔면서 ‘맛있는 수박’이라고 하는 장사꾼을 믿는 사람은 없지만, ‘한 권으로’나 ‘하룻밤에’ 우리나라 역사는 물론 세계사까지 다 알게 해 준다고 하는 책을 믿는 사람 의외로 많다.”

- 본문 중에 “기억하는 것만이 역사가 아니라 잊어버리는 것도 역사다.”라는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한 첫걸음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것,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 사이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그 후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역사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끈을 느슨하게 풀어놓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양자 사이에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만큼, 즉 역사에 대해 책임의식을 느끼는 만큼만 역사는 답을 준다. 그 답이 모두에게 정답인지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스스로 역사를 찾아 나선 사람이 진지했다면, 그에게는 ‘옳은 답’일 것이다.”

전 교수의 이번 책 <서울은 깊다>는 서울이 수도가 된 시점부터 대한제국의 황도건설사업까지를 풀어내고 있다. ‘식민도시에서 물신의 도시로’에 해당하는 부분은 아직 쓰지 못했다고. 일제 강점기 식민도시로 재편되는 문제, 식민도시에 자본주의 문화가 자리 잡는 문제, 해방 후 식민도시의 토대 위에 현대 도시를 건설하는 문제 등을 곧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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