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희곡나라]⑧가족+멜로드라마=환상?
[장정일의희곡나라]⑧가족+멜로드라마=환상?
  • 북데일리
  • 승인 2008.05.2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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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박근형의 <박근형 희곡집 1>(연극과 인간. 2007)을 읽었다. 그리 길지 않은 5편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 두껍지 않은 희곡집은, 얇지만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독특하고 일관된 작가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

우리나라 극작가 가운데 이처럼 ‘엽기적’인 개성이 어디 있었던가? 그는 자기증식 하듯 비슷한 일화와 주제가 반복되는 5편의 작품을 통해 ‘가족’과 ‘멜로드라마’라는 우리 시대의 환상과 관습을 무참히 깨트린다.

극작가로서 박근형의 이름을 인상 깊게 알린 첫 작품은 <청춘예찬>. 화사한 제목과 달리 주인공 박해일은 잦은 결석과 비행(?)으로 2년째 학교를 ‘꿀고’있는 고등학교 2학년생. 그의 아버지는 한 번도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는 허풍선이 건달인데다가, 부부싸움 중에 대드는 아내에게 염산을 부어 실명시킨 전력이 있다. 맹인이 된 해일의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하고 현재는 안마시술소에서 안마사로 일하는데, 아버지는 걸핏하면 전처의 일자리를 찾아가 술값을 뜯어오는 눈치다.

어려서부터 한 번도 가장의 몫을 하는 걸 보지 못한데다가 개구신이기까지 한 아버지를 아들이 존경할리 없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반발짓거리를 하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구슬리거나 가끔씩 손찌검도 해보지만, 어쩔 수 없이 ‘니나돌이(말을 까는것)’를 수락하는 눈치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고, 아들이 아들이 아닌 부자관계의 노골적인 파탄은 뒤에 나올 <푸른 별 이야기>에 삽입된 ‘카페’ 장면의 일화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어느 날 해일은 ‘고삐리’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팔고 여자도 파는 다방에 놀러 갔다가, 거기서 주방 일을 하는 못생긴데다가 간질까지 있는 다섯 살 연상의 여자를 만나 함께 살기로 약조하고 집으로 데려 온다. 그래도 명색이 아버지라, 학교도 졸업 못한 아들이 다방에서 쫒겨나 갈 곳이 없어 데려온 듯한 여자와 함께 살겠다고 하니,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아들은 이죽이며 어깃장을 놓은 아버지를 들이 받는다.

해일 : (술상을 들러업으며)

그래서 뭘 잘해서 병신 새끼처럼.

내가 안 죽이고 데리고 사는 게 고마운 줄 알아야지.

사람이면 안 그래 꼴에 애비라고 지금 폼 잡는 거야.

아버지 : 앉아라.

해일 : 까지마!

아버지: (따귀를 친다.) 정신 좀 드냐. 너는 미쳤어 새끼야.

해일 : 그래 나는 미쳐서 그런다 근데 정신은 안 든다.

아니, 아냐 아주 맑아지는데.

아버지: 맨 정신에 이러면 몰라도 술 쳐먹구 이러면 개야 개.

개 되면 그 순간에 인생 끝나는 거야.

이 불상한 새끼야.

해일 : 너나 개 되지 마라 이 불쌍한 아버지야. 이걸 그냥!

첫날부터 부자가 싸우는 꼴을 보고 그것을 말리던 여자는 간질을 일으키며, 바지에 똥을 싼 채 쓰러진다. 그제서야 부자는 싸움을 멈추고, 화해 아닌 화해를 한다. 이런 찝찝하고 개차반스러운 얘기 어디서 들어나 봤나?

박근형의 대표작으로 꼽는 <대대손손>은 잠시 미뤄두고, <쥐>를 먼저 얘기해야 한다. 이 작품의 첫 머리엔 “무대는 허름한 라디오 방송국 안./ 그 곳에는 사람이 사는 듯 간단한 가재도구가 놓여 있다./ 낡은 방송 시스템 일부와 난로와 침대가 놓여 있다./ 벽에는 멈춰있는 시계와 2000년을 표시한 달력이 걸려 있다.”라는 지문이 나와 있지만, 여기 나오는 시․공간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동화나 민담의 세계다.

큰아들은 집에서 방송을 하고 어머니와 임신한 며느리는 집안일을 한다. 저녁 무렵이 되자 사냥을 나갔던 작은아들과 여동생이 낯선 소년을 데리고 돌아온다.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길에, 빈사 상태에 빠진 길 잃은 어린 소년을 발견한 것이다.

작은아들: 근데 조금 빠삭한 게 맛이 없어 보이죠?

어머니 : 빠삭하기는? 내가 보기엔 제법 실하다.

그리고 맛이란 건 먹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집안에 무수히 널려 있는 주인 없는 신발로 짐작건대, 이들은 인육을 먹는 일을 버릇해 왔고, 아마 그게 이 가족의 생존 수단이었을 것이다. 비록 인육을 먹지는 않았지만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에 나오는 산장이나, 외딴 들판에 위치한 게 분명할 이 작품의 속의 허름한 라디오 방송국(방송국 이름이 ‘라디오 파라다이스’란다)은 동화나 민담에 자주 나오는 ‘숲 속의 집’의 변용이며, 우리가 익히 아는 <헨젤과 그레텔> 에 나오는 ‘숲 속의 집’은 바로 ‘죽음의 집’이다.

가족들의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여기가 방송국 맞나요?”라며 초췌한 방문객이 찾아온다. 집 나간 아이를 찾기 위해 방송을 부탁하러 온 소년의 어머니다. ‘죽음의 집’의 식구들은 허기진 소년의 어머니에게 천연덕스레 자신들이 먹고 남은 ‘스프’를 주고, 소년의 어머니는 연방 “고소하네요”라며 자식의 살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

5편의 작품 가운데 <푸른 별 이야기>는 그나마 엽기성이 가신, 익숙한 얘기에 속한다. 주인공은 오매불망 ‘입봉’을 꿈꾸는 예비 영화감독. 작중 설명은 부족하지만, 처제와의 불륜을 감지한 아내는 지병을 방치하는 방식으로 자살을 선택한 듯하다. 아내의 죽음 이후 외국으로 출국했던 처제가 돌아와 도저히 잊지 못하겠다며 함께 살기를 요청한다.

“원한다면 집에 같이 가요. 엄마한텐 제가 말씀 드릴게요 [...] 내가 다 준비할게요. 우리가 함께 살집하며, 또 제가 일 할 만한 곳도요. 알아보면 몇 군데 있어요”라고 애원하는 처제에게 툭 던지는 감독의 대꾸가 재미나다.

감독: 아직도 날 몰라?

이건 영화가 아니야

신경숙 소설이 아니라니까

(사이)

우린 같이 살 수 없어

박근형의 희곡은 두 개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의사 가족성’이다. 서로 악다구니 하며 싸우는 <청춘예찬>의 부자나 <푸른 별 이야기>에 잠시 등장하는 동일한 부자가 보여주듯이, 그들의 관계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러해야 할 인륜적인 ‘부자관계’를 체현하고 있지 못하다.

<쥐>에 나오는 며느리는 남편인 큰아들이 아닌 작은아들의 아이를 임신한 게 분명하고, 막내딸 역시 작은아들(작은오빠)과의 근친 행위로 잉태를 했다(박근형의 희곡에서는 장자 또한 부권처럼 실추되어 있다). 또 <푸른 별 이야기>에서는 끝내 함께 살기를 거부하는 형부(감독)를 처제가 칼로 거듭 찌르며 “사랑해요”, “같이 살아 달라”고 애원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죽음도 뛰어넘는 사랑으로 맺어진 것일까? 가족 사이에 벌어진 방금 든 예들은, 애초부터 이들이 가족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낳는다. 재차 지연되는 <대대손손>의 비밀이 거기에 있다.

가족이 아니면서 가족이라는 ‘끈끈이’에 묶여 사는 ‘의사 가족성’을 잘 드러내 주는 장면이 <청춘예찬>의 아버지와 어머니다. 그들은 이혼을 했으면서도, ‘의사 가족성’이라는 허위의 울타리에 여전히 구속되어 있지 않은가? 뿐 아니라 <쥐>에서는 ‘죽음의 집’의 가족들이 가출한 아들을 찾는 방송을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방문객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 에미 싫다고 지발로 나간 자식 찾으면 뭐하나요.

그런 자식은 없느니만 못해요.

돌아오면 또 뭐하나요. 지발로 또 나갈텐데.

그냥 엿 바꿔 먹었다 생각하세요.

이참에 여기서 그냥 우리랑 삽시다! 이모!

얘들아 뭐하니, 이모님께 인사 올려라!

착취와 이용을 위해 급조되는 이런 가족(왜냐하면 ‘죽음의 집’의 가족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방문객을 포획한 다음, 실컷 부려먹다가 결국 먹어 치울테니)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오늘날의 ‘가족’을 너무 신성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카프카의 <변신>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듯이 자본주의 문명하의 가족이란 사회적 침탈에 대한 자경(自警=방어벽) 역할만 아니라, ‘가족애’라는 이름으로 착취와 이용이 벌어지는 자본주의의 전초기지가 된지 오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먹어치운 소년의 어머니에게 ‘이모’가 되어 함께 살자고 권하는 ‘죽음의 집’의 후안무치한 일화는 <삽 아니면 도끼>에 다시 반복된다. 영화감독을 사칭하면서 친구 여동생의 몸과 마음을 빼앗은 주인공 맨발이 뒤늦게 찾아온 아내와 아들을 따라 나서려고 하자, 순정을 빼앗긴 친구의 여동생이 체홉의 여주인공처럼 난데없이 이렇게 말한다.

“감독님!/ 언니! 감독님은 언니를 버린 게 아니라 예술을 위해 언니 만나기를 참고 계셨던 거 같아요./ 하시고 싶은 그걸 할 때까지 스스로를 누르고……./ 전 감독님이 불쌍해요./ 그 날이 올 때까지 여기서 우리 모두 조금씩 참고 살아요?” 그러자 맨발의 아내가 뭐라고 즉답했던가? 곧바로 “동생!”하지 않았던가? 이러구러 세월은 흘러, 이 화목한 성(聖) 가족을 보라!

여동생 : (아내의 방을 가리키며) 감독님 날이 찬데 들어가 주무시지 않고?

아내 : 아니예요 동생.

저 여보 내일 큰일도 있고 한데 오늘은 동생 방에서 주무세요.

 

[...]

맨발 : 오늘은 우리 함께 잡시다.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닌 가족, 가족이 아니면서 가족인 박근형의 ‘의사 가족성’의 세계가 가장 신랄하게 드러난 작품이 <대대손손>이다. 자유자재로 시․공간을 이동하면서 3대에 걸친 함경남도 청진 출신의 조씨 집안 내력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빛나는 족보’는 그야말로 ‘비굴과 불륜’의 기록으로 화한다. 아버지(삼대)와 고모(삼순)는 할아버지(사대)․ 할머니(사처)의 자식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에 거류했던 일본 사업가 이께다의 자식이고, 일본에 돈 벌러 갔다가 일본 창녀 마이꼬와 결혼했던 아버지(삼대)는 누가 뿌린 씨앗인지도 모르는 아들(이대)을 친 아들로 여긴다.

<대대손손>을 ‘역사의식 부재’나 ‘식민 경험’이 낳은 비극으로 설명하고, 박근형의 작품 전체에 나타나는 ‘부권의 상실’을 ‘역사의식 부재’와 ‘식민 경험’의 결과인양 해석하고픈 유혹이 없지 않아 있다.

<청춘 예찬>에서 해일을 편애하던 세계사 선생이 사표를 내고 뉴질랜드로 떠난다면서 “나는 이 나라 포기다. 역사는 힘이 없어. 원래는 그게 아닌데”라고 말할 때, 의식되지 못한 역사가 꺼꾸러뜨린 것은 또 한명의 ‘사회적 아버지’인 선생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로 닮지도 않고 피가 섞이지도 않은 가족들이 ‘제사’를 지내며 막을 내리는 것은 대체 무슨 기막힌 반어란 말인가?

‘의사 가족성’과 함께 박근형 희곡의 또 다른 특징 하나는, 연극에 대한 자의식이다. <청춘예찬>에서 아버지와 해일의 싸움을 말리려던 여자가 간질을 일으키며 쓰러진 직후에 뜬금없이 학교에서 단체 관람으로 <벚꽃동산>을 보고 왔던 용필이 “관객이 원하는데 씨발 서비스 정신이 하나도 없어! 프로야구나 청춘의 덫이 백배 낫다 씹새끼들!”이라고 욕하는 대사가 곧바로 덧대어지는데, 그 대사는 아버지와 아들이 개처럼 싸워대고 그것을 말리는 새 며느리가 바지에 똥을 싸며 발작을 일으키는, 향기롭지 못한 바로 그 연극(혹은 장면)에 대한 시의적절한 관객평 같다. 영화처럼 호쾌한 볼거리도 신경숙 소설처럼 감성을 위무하지도 못하는 이따위 연극!

작가의 연극에 대한 자의식과 자괴감이 확연히 드러난 작품 또한 <대대손손>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일대와 그의 애인은 가난한 연극배우며, 이 작품의 서두는 두 사람의 연극으로 시작한다. 그것을 몰래 관람한 일대의 아버지 이대는 “무슨 연극이 그러냐, 도대체 무슨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다. 요즘 다들 죽네 사네 하는 마당에 참 한심 하구나”라면서 “난 또 예술 한답시고 나가 길래 무슨 쉬리 비슷한 영화나 만드는 줄 알았지”라고 지청구한다.

몇몇 대목을 모아 짐작컨대 박근형은 오늘의 한국 연극이 볼거리로 무장한 영화와 달싹지근한 ‘멜로드라마’의 틈바구니에서 질식해 가는 중이라고 보는듯하다. 그런 뜻에서 본 희곡집에는 어떤 방법으로 영화적 볼거리에 응전하고 대학로의 ‘멜로드라마’적 관습을 돌파할 것인지에 대한 작가의 고심이 담겨도 있다.

때문에 저 위에 인용해 놓은 <삽 아니면 도끼>의 두 장면이 어떻게 연출 될 것인지를 상상하면, 웃음이 안 터질 수 없다. 작가는 ‘이런 게 당신들이 보고 싶은 거지? 달싹지근한 거짓화해로 봉합되는 이런 멜로드라마를!’하며 조롱하지 않는가? 진정한 연극은 항상 한 시대의 파국을 드러내며, 파국을 두려워하는 대중적 장르의 관습을 전복한다. <박근형 희곡집 1>이라는 제목에 부응하는 2권이 어서 출간되길 소원한다.

[소설가 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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