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팅 뉴스] 하모니카에 담긴 남편의 애끓는 첫사랑
[화이팅 뉴스] 하모니카에 담긴 남편의 애끓는 첫사랑
  • 이수진 기자
  • 승인 2016.08.05 0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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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이수진 기자] 한 뼘 크기의 하모니카는 그리움과 추억을 불러 오는 묘한 힘이 있다. 영혼을 울리는 전제덕의 하모니카 연주를 듣다보니 오래 전 MBC 여성시대에 방송되었던 하모니카에 대한 사연이 떠오른다.

한 남자가 폐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남자는 막내딸에게 말했다.

“얘야, 하모니카 좀 사다 줄래? 독일제 호노(hohner)면 좋을텐데.”

딸은 악기상가에서 17만원짜리 하모니카를 사다드렸다. 남자는 하모니카를 바라보며 추억에 잠긴 듯 눈가가 촉촉해졌다. 양쪽 귀 옆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딸에게 부탁했다.

“가방 와이셔츠에 있는 종이 박스에 있는 편지봉투 주소에 적혀 있는 사람한테 미안하다고 해라. 내 마지막 소원이다."

50여 년이 넘은 누런 편지봉투에 적힌 이름은 김옥자. 살아 계신다면 70대 중반의 나이일 것이다.

남자에게는 청년 시절, 결혼을 약속한 첫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남자는 첫사랑과 함께 동네에 있는 방죽에서 만나 함께 도망가기로 했다. 남자는 무슨 이유때문인지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았다. 헤어짐을 눈치 챈 여자는 남자에게 고급 하모니카를 마지막 선물로 남기고 떠났다. 남자는 다른 여인과 결혼했다.

매해 5월 말일이면 남자는 방죽에서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해가 질 때까지 하모니카를 불었다. 그날은 남자가 그 여자와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날이었다. 가끔씩 딸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이 사실을 안 남자의 아내는 가끔씩 흐느끼며 말했다.

“저 저수지 물은 10년 가뭄에도 절대 마르지 않을 꺼여! 저 양반 눈물이 얼마나 많이 고여 있을텐데.”

어느 날, 아내는 하모니카를 아궁이 깊숙이 던져버렸다. 남자는 맨손으로 뜨거운 가마솥을 뜯어내고 부뚜막을 허물었다. 마침내 고래방에서 하모니카를 끄집어 냈다. 새카맣게 그을린 하모니카였지만 남자에게는 소중했다. 하지만 하모니카는 다시 사라졌다. 남자가 방죽에 가서 하모니카를 부는 일도 끝이 났다.

남자는 딸이 사다 준 새 하모니카를 머리맡에 두고 하늘나라로 갔다. 아내는 그런 남편이 밉지도 않은지 삼일 내내 울었다. 

“여보, 이루지 못한 일일랑 저승에 가서 꼭 이루시구려."

아내는 속주머니에서 오래된 낡은 하모니카 하나를 꺼냈다. 오래 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숨겨 놓은 불길에 던져졌던 하모니카였다. 무덤에 넣으려 했지만 아들의 반대로 넣지 못했다. 아들은 하모니카에 얽힌 엄마의 가슴앓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두 개의 하모니카에 얽힌 애잔한 사랑 이야기다. 남자는 결혼 후에도 첫사랑을 찾아가서 '그때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던 백년해로를 약속한 아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MBC 라디오 '여성시대' 책자 2016년 6월호에 실린 서울시에 사는 조병화씨사연 재구성

[화이팅 뉴스는 우리 마음을 환하게 물들이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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