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아, 영혼의 울림 ‘에코체임버’
박노아, 영혼의 울림 ‘에코체임버’
  • 제갈지현
  • 승인 2008.05.06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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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최근 뉴욕 거주의 한국인 사진작가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대표적인 예는 ‘김아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라는 그의 사상은 작품에 반영되어, 미국에서 먼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로댕갤러리에서 3.21-5.25까지 <김아타전 - on air>이 많은 인기를 누리는 것만 봐도 한국 현대미술계에서 그의 위치를 짐작할만 하다.

김아타를 존경한다는 또 다른 사진작가, ‘박노아’. 주로 온라인 활동을 하며, 사진을 좋아하는 블로거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사진과 함께 연재하는 그의 삶에 대한 단상 또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현재, http://www.noabaak.com/(www.micegrey.com)를 운영하고 있다.

박노아(Mice Grey)-"사진가, 이미지 시인, 도시 탐험가, 자유인, 파리-뉴욕 거주" 짧막한 그의 이력을 읽고 정체가 궁금하다면, <에코체임버>(눈빛. 2008)을 선택하자. 먼저, 이런 설명이 눈에 띈다.

“표지에는 포토에세이라 써있음에도 불구하고,사실상 형식적으로는 237장의 순수흑백사진과 소네트Sonnet나 詩에 가까운 텍스트가 더해진 Photo Prose & Verse이며, 내용상으로는 도시 삶의 본질과 경험에 대한 실존적 통찰로 빚어진 창작집”

이런 화려한 설명보다 가깝게 다가오는 건 역시 책 속 사진들이다. 이 못지 않게 박노아의 글 또한 유려하다. 감성을 자극하는 사진과 함께 영묘한 목소리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은 매우 진중하다.

책은 뉴욕, 파리 등에 머물며 찍은 흑백사진 237점과 직접 쓴 글들로 이루어진 1부 ‘Prose & Verse’, 파리와 뉴욕에서 사진을 공부하며 느꼈던 것을 써 내려간 2부 ‘예술과 사진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삶에 대한 통찰력 있는 단문 56편이 수록된 3부 ‘삶에 대하여’ 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매력적인 건 역시 3부의 삶의 단상들. 사진작가가 아닌 문학인으로 박노아를 인정케 한다.

<커피>

시간은 모든 것을 분해해 버린다.

특히 열은 더욱 그러하다.

커피를 아주 팔팔 끓여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그 커피가 얼마나 빨리 식어 버리는지 아는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식어 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찬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다.

열을 잃은 커피는 버려지거나

다시 몸속으로 들어가 뜨거워진다.

차가운 커피를 볼 때마다 당신의 식어 버린 심장을 기억하라.

<희망과 절망>

사람의 한쪽 눈은 희망을, 또 다른 눈은 절망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희망과 절망의 거리는 좁다란 양미간 사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치유란 이 두 눈 중 한쪽 눈을 좀더 크게 뜨는 것이며,

눈물과 그리움은 눈을 뜨려고 노력할 때 분비되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당신은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You``re on the right track.``

제목 <에코 체임버>는 ‘울림이 있는 상자 또는 방’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책 속에 묘사된 인물 한 명 한 명은 다양한 울림을 가지고 있고, 작가는 그들 한 명 한 명이 곧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사람들의 그림자, 그중에서도 특히, ‘슬픔’에 주목한다. 삶의 한계에 부딪쳐 절망하고 그로 인해 느끼는 슬픔과 화해하고 융화해 가는 경험을 시각화해 주는 것.

책은 “슬픔이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나눔으로써 비로소 위로받게 된다”라며, 삶의 결과를 대함에 있어서 절망에 그치기보다는 삶이 이루어지는 순간순간에 충실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accept)를 제안한다.

삶이 주제인 사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삶을 논하는 글귀에서 울림을 느낀다면, 나만의 방을 만들 수 있다. 절대포기란 없이 떠나보자. 저자가 단언하건데, 어디에 있든 그의 시(詩)가 결연히 당신을 보호할 것이다.

[제갈지현 책전문기자 galji@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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