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 잔혹사` 혹은 `마징가 계보학`
`미아리 잔혹사` 혹은 `마징가 계보학`
  • 북데일리
  • 승인 2005.11.0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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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의 새 시집 <마징가 계보학>(창비. 2005)을 `아수라백작`의 또 다른 얼굴로 읽어보았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성장코드인 `만화`와 `성(性)`을 두 다리 삼아 가난하지만 맑았던 지난 삶의 기억을 이끌어내고 아팠지만 아름다운 정서로 세속의 먼저를 털어줍니다.

1. 미아리잔혹사

삼선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곳의 지형이다. 말죽거리나 당고개가 가진 지형의 이미지 말이다. 그곳은 솜과 관으로 명성을 굳힌 지역이다. 그곳은 눈을 팽팽 돌게 만드는 좁은 길, 오래된 도성과 담쟁이들, 그리고 성안에서 상처받고 버려진 삶들이 먼지처럼 반짝거리는 땅이다.

이 땅에는 또 다른 이미지, 권혁웅의 잔상이 있다. 애마의 잔등에 꼭 달라붙어 말 달리고, 뒷골목으로 하여금 기겁을 하도록 만들던 냉혹한 젊은 시인, 마치 보이지 않는 화살로 멀리 떨어져 있는 촛불을 끄는 전설적인 궁수. 그가 `말죽거리 잔혹사` 후속편 `미아리 잔혹사`에 권상우를 이어 2대 킬러가 될 것은 분명하다. (보르헤스의 ‘냉혹한 살인자 빌 해리건’ 인용)

2. 동도극장

잠실운동장으로 알고 있던 마징가가 숨겨진 장소다. 마징가 뿐 아니라 업그레이드 마징가, 짱가, 그랜다이저까지 철의 역사가 이곳에 다 있다. 75년 광복 30주년을 기념하여 명동 사보이호텔에서 신상사파가 양은이파에게 사시미로 당한 이후, 순진한 빗살무늬토기시대는 가고 바야흐로 살벌한 철기시대가 시작됐다.

철기문화의 꽃은 86년 광복절 전야, 강남 서진룸살롱에서 진석이파가 맘보파에게 연장을 담그면서 절정에 달했다. 세월은 흘러 재러리를 쓰는 넘버투를 누르고, 잦은 회의와 기획, 프리젠테이션, 이너넷에 정통한 한석규 같은 불한당들이 밤의 역사를 새로 쓴다. 하지만 동도극장에서는 아직 철의 시대, 즉 연장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

3. 애마부인

첫 상영작은 원조 애마 안소영(본명 안귀자)선배가 나옵니다. 안 선배는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애마의 굴레를 벗고 사람냄새 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죠. 하지만 안 선배가 말에서 내려 선데이서울 화보속으로 걸어들어 갔을 때, 같이 그 속에 들어가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도 못하고 풀칠을 해대던 밤꽃향 그윽한 시절을 잊을 수는 없는 겁니다. 용서는 하되 잊을 수는 없는 게지요.

2대 애마 오수비 선배는 “애마야, 네 몸은 언제 봐도 예뻐. 불꽃을 숨기고 있는 몸이야”라는 법어를 남기고 돌연 바다로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3대 애마 김부선 선배는 작년 말죽거리에서 권상우를 유혹하여 잔혹사를 소프트하게 터치했지만, 차기작 미아리잔혹사에서는 권혁웅의 들배지기와 배대뒤치기에 자지러질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4. 불한당들의 세계사

1) 여주인

최루탄 사과탄 지랄탄을 만들던 XX화학은 청와대 여주인의 동생이고, 거기서 땡긴 돈으로 청보(청와대 보스?)핀토스 야구단을 운영했다는 야사가 있죠. 이 청와대 보스는 무솔리니의 사생아인 옆집 대머리 아저씨를 선발투수로 영입해서 7년 동안 풀타임으로 최루탄을 쏘게 했죠. 남은 건 전직 보스로서 조화 하나 보낼 수 없는 27만원뿐. 풀타임 메이저리거는 역시 배고픈 여정인가 봅니다.

2) 흑장미빛 모퉁이의 남자

장사동은 대머리 아저씨네 집에서 키우는 개다. 늘 검정 코트를 입고 다니던 사동은 육사시절은 얌전하였으나, 청와대 뒷골목에서 중소기업 사장들의 삥을 뜯고 다녔다. 물어온 개뼉다구를 충실하게 주군께 바치고, 스스로 구치소 사동행을 택하여, 끝까지 돈의 행방을 말하지 않음으로, 세인들로 하여금 충신과 쾌남의 작위를 받았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사동은 `돈워리`하므로 `비해피`하다.

3) 친절한 김형사

동대문서와 중부서의 차이는 `재러리`와 `이너넷`의 차이다. 동대문서장은 총경이고, 중부서장은 경무관이다. 동대문서 박형사는 애들이 들어오는 족족 자근자근 밟아주었고, 중부서 김형사는 여러 가지 취조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다만 좀 실망스러웠던 것은 자취방에서 압수해온 불온서적이 ‘정치학 개론’ ‘정치학 원론’ ‘구미외교사’ 등이었다는 것이다. 급기야 ‘소련정치론’으로 내 머리를 후려치면서 왈, “이 자식 완존히 빨갱이고만...”이라고 절규하던 부분. 나도 김형사와 함께 오열하다 끝내 실신하고 말았다.

4) 잔혹한 폭탄주

87년 한정식집 ‘장원’에서 대머리의 동생 노가리가 후계자로 지명된 데 대해 반발하는 인사에게 술잔을 던진 비화가 있다. 밤에도 넥타이 차림으로 잠자리에 들어, 큰 귀를 열고 민심을 듣는다고 생각한 분이 술잔을 던졌으니. 그 잔에 맞은 건 칼기에 탔던 가난한 해외노동자들이었고, 무솔리니의 사생아의 이복동생을 더 모셔야 했던 우리들이었다. 어디서나 그놈의 폭탄주가 문제였다. 80년대의 눈물은 죄다 폭탄주 속에 들어있었다.

(사진 = 팀 루드먼 작 `물속의 나무`)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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