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엔♪이음악]⑨뜨거운 토론과 닮은 음악
[이책엔♪이음악]⑨뜨거운 토론과 닮은 음악
  • 북데일리
  • 승인 2008.03.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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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지난 주말 한 온라인 책 카페에서 주최하는 독서 토론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1932년 작 <멋진 신세계>(문예출판사. 1998)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죠.

<멋진 신세계>는 기계문명과 과학이 초래할 수 있는 끔찍한 미래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완벽하게 통제된 전체주의 사회를 묘사하죠. 진보의 의미, 생명의 존엄성, 과학 기술의 위험성, 집단주의의 폐해 등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입니다.

토론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참석자들은 미리 준비된 논제를 가지고 거침없이 발언했습니다. 개인의 행복과 자유, 사회 안정, 과학의 제한 범위, 유토피아의 의미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습니다.

주장과 반박, 동조와 비판의 소리가 끊임없이 넘실대는 현장은 흡사 축제판과 같았습니다. 논리와 말의 향연이 펼쳐지는 그런 축제 말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웃음만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날선 대립에 따른 팽팽한 긴장감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독서광들이 그간 갈고 닦은 독서력과 토론 실력을 선보이는 자리였으니까요. 물론 승부와는 관계없었습니다.

 

<왼쪽 위-알 디 메올라, 오른쪽 위-존 맥러플린, 오른쪽 아래-파코 데 루치아>

 

돌아오는 길에 이날의 분위기를 닮은 음반 한 장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1981년 작 Friday Night In San Francisco입니다. 세 명의 기타 연주자 알 디 메올라(Al Di Meola)와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 파코 데 루치아(Paco De Lucia)가 함께한 공연 실황을 담은 앨범이죠.

기타의 거장으로 불리는 인물들이 모인 만큼 기타로 보여줄 수 있는 테크닉과 감성의 최고 경지를 보여줍니다. 세 대 혹은 두 대의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이루어진 음악이지만 어느 한 부분 허전함을 느낄 수 없죠.

하필 이 음반을 꼽은 이유는 고수들의 격렬한 부딪힘 때문입니다. 토론 현장에서는 말과 논리였다면 음악에서는 각각의 곡마다 주고받는 솔로입니다. ‘불꽃이 튄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죠. 때로는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결국은 화합과 조화를 끌어내는 모습도 비슷합니다. 토론의 목적이 상대방을 짓누르는 게 아니듯, 음악에서도 협연자의 연주를 깔아뭉개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하나의 완성된 음악을 만들 수가 없어서죠. 각각의 곡 중간 중간에 벌어지는 격한 대립도 종국에는 아름다움을 끌어냅니다.

토론이건 음악이건 간에 투닥거릴 수 있는 열정과 서로에 대한 배려가 동시에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만약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아마 그날의 환상적인 토론도 81년의 명연도 없었을 테지요.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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