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한국소설] 일상이라는 잔혹극
[내사랑한국소설] 일상이라는 잔혹극
  • 북데일리
  • 승인 2008.03.1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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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사람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과거가 대체로 행복한 기억으로 재구성 되는 이유는, 이미 완료된 일이기에 새로운 두려움이 개입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몸에 가장 가까운 미래에 불과하므로, 과거로 편입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시간이다.

현재라는 미지의 시간이 내려앉은 공간, 현실 역시 두려움의 대상이다. <사육장 쪽으로> (문학동네. 2007)를 읽는 내내 세상은 정말 이렇게 비극의 무대인가, 그리고 편혜영은 왜 이런 잔인한 상상력으로 세상을 읽었을까를 생각했다.

모든 작가들은 자기 나름의 촉수를 더듬어 세상을 읽는다. 그것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옮겨놓으면, 우리는 그 이야기를 통해 작가들이 더듬어 파악한 세상을 읽는다. 편혜영이 자신의 비극적 상상력이 날아가 꽂힌 과녁에다가 우리 손을 끌어다 놓고 감촉을 느껴보라고 할 때, 우리는 분장을 벗겨낸 세상의 맨 얼굴을 보고야만다.

삶의 불확실성과 그에서 오는 공포를 탁월하게 묘사한 표제작 <사육장 쪽으로>는 작가의 세계인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남자는 ‘전원주택이야말로 진정한 도시인의 꿈’이라는 생각으로 도시외곽의 집을 사서 이주한다. 그러나 워낙 부채비율이 높아 결국 파산 집행으로 집을 내놓아야 할 처지가 된다.

그는 남들처럼 열심히 산다. 매일 같은 시각에 집을 나서기 위해 같은 시각에 잠에서 깨어났고, 그러기위해 날마다 비슷한 시각에 잠자리에 든다. 그럼에도 행복을 실현시켜줄 것 같았던 집은 하루하루 파산 집행이 다가오는 악몽의 공간이 된다.

게다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육장의 개 짖는 소리는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온다. 도시로 출근해 일에 파묻혀 있는 동안에는 마취제를 맞은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걱정도 잊고 지낸다. 그러나 고요한 전원주택 동네로 들어서면 마치 길을 안내하듯 개들의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어느 날 파산 집행인보다 사육장의 개들이 먼저 남자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파산이 남자의 마음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것처럼 개들은 남자의 아이를 물기 시작했다. 남자는 개들을 몽둥이로 쫓으려 했으나 개들이 맞는지 아이가 맞는지 모를 상황이 되었다.

의식을 잃은 아이를 차에 태우고 병원을 찾아 나서지만, 사람들은 병원이 사육장 쪽에 있다고만 하지, 실제 사육장을 본 이는 없었다. 끝나도 잔영이 사라지지 않는 공포영화처럼 소설은 남자가 병원을 찾지 못하고 길 위에서 헤매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도시를 탈출한 남자의 부푼 꿈은 눈뜬 악몽으로 귀결되었다.

소설의 공간은 어둡고 습하다. 언제 걷힐지 모르는 안개 속을 달리는 차안에 있는 기분이다. 이 소설의 미덕은, 쾌청하고 밝아서 오히려 감추어져있던 어두운 진실들이 보이기 시작한 다는 점이다.

그는 병원을 빨리 찾기 위해 고속도로를 탄다. 그러나 삶의 지름길이자 가장 합리적인 길이라 생각되는 고속도로에도, 우리의 매일을 비극의 방향으로 몰아가는 사회체계가 덩치 큰 트럭의 모습으로 남자와 함께 달리고 있다.

문체는 우리 일상처럼 단순하다. 말랑한 감동이나 화려한 수식은 아예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이동 중인 출근 길 같은 문장. 짧고 쉬운 문장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쿵 하는 부딪힘이 있는, 출근길 교통사고와도 같은 이야기. 알고 보니 오늘 우리가 지나왔던 일상의 이야기. 모르고 지나쳤는데 잠시 후 생각해보니 소름이 돋는 이 세상의 모습.

거짓 공포물과 다르다. 상업 공포물들은 어떻게 하면 인간 공포심리를 극대화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지만, 이 소설은 어떤 존재의 궁극적 실체를 보여주는 작가의 노력이 깃든 작품이다. 온순해 보이는 동물이 무시무시한 송곳니를 숨기고 있음을 증명해보이려 힘껏 그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작가의 두 손을 보는 듯 하다.

작가는 잔혹극이라는 선봉장을 내세우고, 맹수의 그것과도 같은 세상의 눈을 마주 노려보고 있다. 작가가 한 번 기를 꺾어놓은 세상의 눈빛을 우리가 대하니, 크게 무섭지도 않고 오히려 또렷하게 보인다. 우리를 사육해 오던 그 눈빛. 이 소설을 읽으니 세상을 확실히 한 단계 더 알겠다. 어떤 식으로든, 세계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면 소설문학으로서의 가치를 단단하게 가지고 있는 셈이다.

낯선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것은 익숙한 것을 비추는 거울이다. 여행을 떠나보면 내 집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에서 세계인식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낯선 세계로 떠나보면 늑대도 만나고 코끼리 떼도 만날 것이다. 반갑기도 두렵기도 하겠다. 그들은 나와 닮았기도 하니까. 어쩌면 대화가 통할수도 있다. 그들은 일상이라는 사육장에서 탈출하려는 우리의 발버둥에 응원을 보내줄지도 모른다.

(일러스트 - je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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