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야, 장난 좀 그만 쳐!
통계야, 장난 좀 그만 쳐!
  • 북데일리
  • 승인 2008.01.1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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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서울대학과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같은 상위권학교들은 통합논술에서 문과생들에게 수리논술 문제를 출제하기도 한다. 수리논술 하면 본고사를 으레 떠올리지만 문과생들에게 필요한 수리적 지식은 통계나 확률 정도다. 미적분이나 함수, 이 수준까지는 요구하지 않는다.

가장 흔한 유형은 대푯값, 최빈값, 중앙값 등의 개념을 갖고 이를 중용이나 양극화 문제와 연결시키는 능력을 파악하는 것이다. 한양대(모의고사)와 연세대(수시), 서울여대(수시)가 그랬다. 통계 지식을 물어보는 게 아니라 통계를 통해 이면의 인간의 심리를 물어보는 우회적 접근도 있다.

조건부 확률이라는 개념을 활용해 통계 수치가 갖고 있는 착시 현상을 설명하도록 한 서울대 모의고사와 통계 수치가 보여주는 한국인들의 소비 패턴을 읽도록 요구한 고려대 모의고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성균관대(2007 수시)와 숙명여대(모의고사)처럼 지식격차 가설이라는 이론을 설명해주고 표나 그래프가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지 반증하는지 쓰라고 한 경우도 있다.

통합 논술을 잘 하기 위해 통계를 읽어내는 능력, 즉 통계리터러시(저자는 통계 센스라고 부른다)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상위권 학생들은 겨울방학 중에 통계학 개론서를 한 권쯤 읽어 두는 것이 좋다.

일본의 소장 경제학자가 쓴 이 책 <통계 센스>(다산북스. 2007)는 실용적이며 쉽기 때문에 고등학생도 읽을 수 있다. 최대한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은 문과 출신으로 수학을 학교에서 배운 지 20년이 훨씬 넘은 기자도 술술 읽었다는 점에서 증명된다.

이론은 구체적인 사례로 시작하고 수식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어지간하면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다. 어려운 용어는 글 안에서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어 별도의 예비지식들이 필요 없다.

이 책이 논술에 도움이 되는 통계의 개념과 쉽게 친숙해질 수 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수치 이면에 숨은 진실을 읽을 수 있는 눈,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상식과 통념을 뒤집는 독창적인 해석은 통계 수치가 아니라 통계 이면의 진실을 보는 눈이 있어야 가능해진다.

저자가 통계를 읽는 프레임은 ‘어떻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왜’까지 고려한 ‘어떻게’였다. 요즘 들어 체감 경기는 안 좋은데 정부의 발표는 경기가 좋은 것으로 나온다. 왜 그럴까? 월드컵의 경제 효과, 한류의 경제 효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신빙성 있는 수치일까? 20세기 들어서 갑자기 평균 수명이 길어진 것은 무슨 이유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 “둘만 낳아서 잘 기르자”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저 출산 현상이 그렇게 급속하게 진행된 까닭은 뭘까?

저자에 따르면 이 질문들의 답은 통계의 장난이다. 통계는 원래 거짓말을 잘 하기 때문이란다. 통계를 내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은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혼동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통계의 축소나 부풀림, 변수 조작 같은 일들을 태연히 저지르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통계를 제대로 읽지 못하도록 방해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경제효과는 절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경제효과를 산출할 때 픽션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경제연구소들은 자신의 발표가 언론 지상에 오르내리기를 선호한다. 큰 수치로 발표되는 것이 자극적이기 때문에 일단 튀기고 보는 것이다.

출산율이 갑자기 떨어진 것도 실제와는 괴리가 있다. 만혼화와 고령 출산화가 함께 진행되면서 결혼과 출산을 이미 마친 30대와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20대들이 동거하고 있기 때문에 20~30대의 출산율이 모두 낮아진 결과란다.

인과관계와 상관관계의 혼동은 다음과 같은 사례로 설명될 수 있다. 미국 럿거스 대학의 조지 켈링 교수가 1982년에 제창한 ‘깨진 유리창 이론’을 예로 들어보자. 일종의 범죄 이론으로서 건물의 유리창이 한 장이라도 깨진 상태를 그대로 방치해두면 외부에서는 그 건물에 대한 관리가 소홀한 것으로 인식하고, 이로 인해 유리창이 연이어서 깨져나간다는 이론이다.

가게에서 물건을 슬쩍하는 사람이나 불법주차 등과 같은 사소한 범죄를 방치하면 장래에는 흉악범죄가 크게 증가하여 치안을 악화시키게 되므로 엄중 단속해야만 한다는 논리가 뒤 따른다. 어려울 것 없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이야기다.

1994년 뉴욕 시의 시장으로 취임했던 루돌프 줄리아니 전 시장은 뉴욕 시내의 ‘깨진 유리창’을 일소하기 위해 1990년대 후반부터 경찰력을 대폭 증원하여 지하철의 낙서나 무임승차 등 경미한 범죄를 철저하게 단속했단다. 그 결과 흉악범죄가 급격하게 감소하여 치안이 상당히 개선되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이쯤 되면 이론이 아니라 법칙 대접을 받아야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경기가 호전되면서 뉴욕 시의 범죄 발생률이 상당히 낮아진 것과 저 출산의 진전에 따라 범죄를 일으키기 쉬운 청년 인구(10대 후반부터 20대 전반)가 줄어든 탓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뤄진 사례는 일본의 경우다. 그래서 아쉽다. 통합논술은 통계논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시장이 커진 마당에 우리의 현실에 맞는 재미있는 통계개론서 한 권쯤 나와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지나친 욕심일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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