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철거반 나빠` 빈부갈등 다룬 동화
`재개발 철거반 나빠` 빈부갈등 다룬 동화
  • 북데일리
  • 승인 2008.01.1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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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신간 <하늘 끝 마을>(아이세움. 2008)의 뒤표지에는 ‘11세 이상’이라고 찍혀있다. 때문에 글씨가 크다. 수채화풍의 그림도 페이지 곳곳에 시원하게 자리 잡았다. 어른에게는 만만해 보이는 모양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작가 조성자는 실제 경험을 토대로 80년대 도시재개발에 따른 빈부갈등을 다룬다.

주인공은 달동네 ‘하늘 끝 마을’의 판잣집에 사는 헌자다. 가난해도 학교에서는 모범생에 성격 좋은 아이다. 무탈한 하루를 보내던 와중,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바로 동네 아래 호화로운 ‘궁전 아파트’가 들어선 것.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흔히 말하는 ‘가진 자의 거드름’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처음에는 달동네 주민들도 아파트 덕에 일자리도 늘고 동네도 좋아질 거라 기대했지만, 아파트 주민들의 으스댐이 계속되면서 이내 실망하고 만다.

헌자도 학교에 아파트 아이들이 전학 오면서 온갖 시련을 겪는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도둑으로 의심 받거나, 친구들 사이에 잦은 다툼이 벌어진다. 아파트에 사는 아주머니들에게 괜한 괄시를 받기도 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결국 판잣집은 헐리고, 헌자와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자본과 개발의 논리에 동심은 그렇게 상처 받는다.

책은 동화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지녔다. “아저씨, 산동네 아이들 제발 못 오게 하세요. 애들이 어찌나 사나운지 아파트 아이들이 걔네들만 보면 벌벌 기잖아요. 저 꼬마한테 우리 집 아이 손가락 물리는 것 보셨지요?” 같은 문장은 가난에 대한 일반의 편견을 압축해 보여준다.

무자비한 철거를 묘사한 다음과 같은 장면은 잊고 있던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을 되살려 준다.

“동네 사람들의 힘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애초에 소용이 없는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우리 동네 집은 하나씩 하나씩 부서져서 뻥튀기 과자를 으깨 놓은 것처럼 되어 버렸다. 순돌이네 할아버지가 기절을 해도 소용없고, 동네 아주머니가 울고불고 통사정을 해도 소용없었다.”

아쉬운 점은 다소 극단적인 설정이다. ‘부=악’, ‘가난=선‘이라는 진부한 도식이 적잖게 포진해있다. 아래 아파트 주민 2명이 나누는 대화와 개에게 물려도 순진하게 가만히 있는 헌자 아버지의 대사가 특히 그렇다.

“언니, 준형이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도 왔지?”

“응, 아까 준형이가 귀뜸해 주더라, 제일 촌스러운 아이야. 이름까지도 촌스럽게 헌자래. 걘 생각보다 수준이 낮은가 봐.” -아파트에 사는 어머니 둘이 나눈 대화 중에서-

“허허, 치료비는 무슨... 그 집 안주인까지 뛰어나와서 동네가 떠나가게 떠들어 대는데... 하여튼 자기 집 개는 똑똑해서 이제까지 도둑질하러 담을 넘어 온 사람이나 험상궂은 사람말고는 물지 않았다면서 어찌나 소리를 지르든지... 하도 기가 막혀서 그냥 돌아 나왔소.” -개에 물리고 집에 돌아온 헌자 아버지의 말 중에서-

이런 식의 돈에 유무에 따른 상반된 성격의 인물과 상황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어린 독자들에게 자칫 ‘부=나쁘다’ 는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작품은 1993년 첫 출간됐다. 이번 책은 개정판이다. 때문에 지금은 크게 와 닿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회에는 돈을 이유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부조리가 여전히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하늘 끝 마을>은 지금도 의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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