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박재상
67. 박재상
  • 북데일리
  • 승인 2007.12.2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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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문학동네. 2007)

[북데일리] 지난 7월 5일, 프로야구 SK와이번스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한 게시물이 4,500여건의 조회수와 170여개의 댓글이 달려 화제가 됐다. 글쓴이는 다름 아닌 프로 6년차 SK 외야수 박재상(25). 그는 ‘안녕하세요. 박재상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팀을 응원해주는 많은 팬들의 성원에 감사하다는 인사 글을 남겼다.

열성 팬들이 모여 각종 의견을 나누는 게시판에 선수가 직접 글을 남긴 것은 박재상이 처음이었다. 문장과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 쓴 티가 역력했다. 뛰어난 문장력은 아니었지만, 오탈자 없이 앞뒤 문맥이 잘 맞춰진 매끄러운 글이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 SK의 우승으로 그 어느 스토브리그 때보다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박재상을 만났다. “글을 제법 잘 쓴다”고 운을 띄우며 당시 게시글에 대해 물었더니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

“그게 다 독서를 많이 한 덕분 아닙니까.”

프로야구 선수들은 바쁘다. 시즌이 개막되면 선수들은 주 6일 동안 매일같이 게임을 한다. 시즌 중 유일한 휴일인 월요일의 경우도 ‘특별연습’ 등으로 방망이를 놓지 못하기 일쑤. 요즘 같은 스토브리그라고 해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 가지 구단 행사 및 연봉협상 그리고 1월부터 있을 전지훈련에 대비하기 위한 체력단련에 구슬땀을 흘린다. 이렇게 바쁜 야구선수들이 맘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박재상은 일 년치 독서량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해외전지훈련 기간 동안 이루어진다며 그가 책을 읽게 된 계기를 털어놓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한 첫해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구단에서 적어준 준비물 목록에 ‘책’이 포함됐다. `설마, 책을 읽겠어`라고 생각하면서도 신인선수니 구단에서 시키는데로 준비물을 챙겼단다. 해외 전지훈련 기간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저녁 식사 이후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TV를 틀어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 TV 시청은 불가능했고, 가져간 게임기로 오락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할 일이 너무 없고 심심해서 선택한 것이 바로 독서였다고. 막상 읽기 시작하니 재미를 느꼈고 점점 책의 매력에 빠지게 됐단다.

그는 역사관련 서적을 좋아한다고 했다. 한국사는 물론 세계사를 다룬 소설, 인문 서적 등 ‘역사’에 ‘역’자만 들어가면 사족을 못 쓴다고. 당연히 역사 서적 가운데 한권을 추천할 줄 알았는데,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문학동네. 2007)를 추천도서로 꼽았다.

“학창시절에 <어린왕자>를 읽었을 땐 사실 별로였죠. 그런데 얼마 전 팬으로부터 선물 받아서 겸사겸사 다시 읽게 됐는데 ‘사람의 생각에 따라 표현이 다를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그는 ‘길들여진다는 것은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라던 여우의 말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책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강조하곤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우며 어린왕자를 향한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SK와이번스는 다음달 6일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8개 구단 중 가장 빠른 스타트다. “이번 전지훈련에는 어떤 책을 가져갈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역사소설 편식을 조금 자제하고 팬들이 선물해준 책 위주로 가져가겠단다. 이때 ‘팬들이 선물해준’을 꼭 강조해 달라며 팬을 아끼는 마음을 드러냈다.

“사실 지난 전지훈련에서 책을 많이 못 읽었어요. 김성근 감독님은 훈련량이 너무 많아서 책 읽을 시간은 고사하고 피곤해서 곯아떨어지기 바빴죠. 이번 캠프에서도 책 읽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살짝 걱정이긴해요(웃음).”

2007년 1군에서 풀 시즌을 뛰며 자신감을 얻었다는 박재상. 그는 이제야 야구의 진정한 재미를 알았다며 ‘프로 선수로 길들여지고 있는 중’이라고 표현했다. 내년 시즌에는 야구는 물론 그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과 어떤 모습으로 관계를 맺어 나갈지 기대 된다.(사진=`SK와이번스` 제공)

[구윤정 기자 kido99@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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