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 던져 복원한 한 트럼페터의 일생
온 몸 던져 복원한 한 트럼페터의 일생
  • 북데일리
  • 승인 2007.12.2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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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1950년대 쿨재즈의 대표 트럼페터 쳇 베이커. 그의 일생을 다룬 신간 <쳇 베이커: 악마가 부른 천사의 노래>(을유문화사. 2007)는 절로 탄성이 나오는 책이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 인물의 생애가 완벽에 가깝게 복원돼서다.

이는 저자 제임스 개빈의 온 몸을 던진 추적이 있기에 가능했다. ‘뉴욕타임스’와 같은 유수의 신문과 잡지에서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는 그는 이번 집필을 위해 1996년부터 약 5년간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자료 수집에 몰두했다.

그 결과 과거 쳇 베이커의 동료와 연인들의 인터뷰는 다양한 물론 미공개 자료를 모을 수 있었다.

때문에 책에 묘사된 그의 행동과 여러 정황은 사진을 보는 듯 선명하다. 예로 색스폰 연주자 스탄 게츠와 쳇 베이커의 무대위의 갈등을 묘사한 부분을 보자.

“처음 만나자마자 서로를 싫어했으며, 그들이 벌인 라이브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함께 연주한 테마의 앙상블은 잔뜩 엉켜버렸고 서로 솔로를 하려고 경쟁하기 일쑤였다. 두 사람이 헤이그의 무대에 올랐을 때, 쳇 베이커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바닥을 응시한 채 연주하자 스탄 게츠가 비웃음 어린 얼굴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는 것이 목격됐다.”

또한 인터뷰이의 생생한 증언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800페이지의 분량을 술술 넘길 수 있도록 생동감을 준다. 다음은 옛 동료 피아니스트 러스 프리먼이 그의 음악을 평한 대목이다.

“쳇 베이커가 마일즈 데이비스와 달랐던 점이 바로 그 부분이에요. 그의 연주는 한결 더 부드럽고 예뻤죠. 물론 마일즈도 예쁜 연주에 능했습니다. 하지만 왠지 어둡다는 느낌이 들었잖아요. 쳇 베이커의 트럼펫은 마치 천사 같았죠.”

저자는 이런 인터뷰이의 음성을 글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마치 방대한 길이의 인터뷰 기사나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는 착각을 줄 정도다.

이 외에 그의 행적을 쫓는 과정에서 언급되는 당시 재즈계에 대한 설명도 흥미진진하다. 수많은 연주자와 앨범, 이에 얽힌 뒷이야기 등은 재즈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여기에 재즈비평가인 번역자 김현준이 따로 각주를 달아 풍부함을 더한다.

책은 쳇 베이커나 재즈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읽어볼 만 하다. 천재성을 보이는 어린시절부터 사인이 모호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이 한 편의 영화와 같이 전개돼서다. 저자의 열정은 재즈팬과 일반 독자 모두를 위한 걸출한 작품을 빚어냈다.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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