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가 장하늘 "좋은 글은 고속도로처럼"
문장가 장하늘 "좋은 글은 고속도로처럼"
  • 북데일리
  • 승인 2007.11.2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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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장력 높이기 기술> 저자 장하늘

[북데일리] 호통을 각오한 인터뷰였다. 문장가 장하늘 선생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간 썼던 글을 뒤척였다. 대부분 마감에 쫓겨 쓴 원고였다. 선생의 불호령을 피해 갈 수 없는 문장들. “낫게 쓰려 얼마나 애썼던가” 자문했다. 소심한 중얼거림만이 입안을 맴돌았다.

이오덕 선생이 ‘정신의 글쓰기’를 호령했다면, 장하늘 선생은 ‘맛깔스런 글쓰기’를 가르치는 우리시대 문장가다.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문장>(2005) <글 고치기 전략>(2006) <국어 실력을 쑥쑥 높여 주는 독해 기술>(다산초당. 2006) 등에 이어 <문장력 높이기 기술>(다산초당) <표기법 소사전>(문장연구사. 2007)을 발표한 그를 최근 관악구 신림본동에 위치한 자택에서 만났다.

궁금했던 그의 처소는 종이 냄새로 가득했다. 집필실 사방을 글쓰기 자료가 메우고 있었다. 전부 디지털 파일이 아닌 손수 오리고, 붙여 만든 종이 자료였다. 컴퓨터를 못하는 선생은 좋은 칼럼, 책, 문구만 보면 채집한다.

그렇게 6 -7 년은 모아야 책 한 권 쓸 만한 자료가 모인다. ‘마침표’ ‘쉼표’ ‘띄어쓰기’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 파일만도 줄잡아 수백 개에 이르는 듯 했다. 선생이 써온 20여 권의 책이 모두 이곳에서 탄생했다.

듣던 대로, 선생의 건강은 좋지 못했다. 간암 수술 후유증 때문이다. 인터뷰 당일 역시 종종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글 좀 똑바로 쓰라”는 불호령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사명감 때문에 글을 쓴다”고 말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매일 6시간씩 집필에 매달리는 이유 역시 ‘바른 우리말 쓰기’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대한민국문장론은 정지 상태야. 그럼 큰일 나. 한권이라도 더 쓰는 게 나의 사명이야. 그런 데 다 쓰고 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쇠약한 목소리였으나 각오는 결연했다. 이어 그의 화살은 신문으로 향했다. 그는 신문의 글쓰기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신문엔 온통 죽은 문장뿐이야. 왜들 그렇게 재미없게 써. 우리말이 얼마나 멋있는데. 격언, 속담, 수사법 얼마나 쓸게 많아. 그런데 우리나라 기자들은 도대체 문장 연구를 안 해. 칼럼니스트도 마찬가지야. 첫 문장만 보면 그 사람 글 실력이 단번에 나온다고. 마무리도 마찬가지고. 도대체 제 정신으로 쓰는 거야? 막걸리 먹었어?”

선생은 문장쓰기에 있어 세 가지를 강조했다. ▲ 주제가 바람직한가 ▲ 재미있게 읽히는가 ▲읽은 다음 본전 생각은 안 나는 가. 이것이 그가 꼽은 글쓰기 기본 원칙이다. 특히 마지막 요건은 언론인이 새겨 두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 먹고 살면서 본전 생각나는 문장 쓰는 기자나 칼럼니스트는 전부 실격”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어 그는 간결체를 주문했다. “간결은 지혜의 정신”이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문장의 다이어트 즉,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 쓰기야 말로 좋은 문장의 지름길이라는 것.

그렇다고 짧게 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수사법을 구사할 수 있어야 진짜 문장가가 된다. 선생은 “풍유법, 반어법, 역설법 등의 다양한 표현들을 써야 문장에 생기가 흐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격언이나 속담을 더하면 금상첨화. 산문과 운문의 중간에 해당하는 리듬을 고려해 글을 쓰다 보면 변화를 느낄 수 있다니 노력해 볼 일이다.

선생이 우리말 연구에 헌신 해 온지도 어언 30년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에서 문장론의 대가가 되기까지. 그는 공부를 게을리 해본 적이 없다. 일본에서 유학하며 과학적인 문장론을 연구 했고 사전 형태의 책부터 글쓰기 실용서까지 왕성한 저작 활동을 통해 우리말 연구의 역사를 쌓아 왔다.

그의 연구는 계속 된다. <문장표기대사전>의 출간을 위해 밤잠을 덜어내고 있다. 끊임없는 글쓰기는 선생의 생명줄이요 삶의 사명이다. 내내 부끄러웠던 인터뷰. 그는 마지막 순간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 이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아름다워. 메밀 맡이나 방울 소리 묘사한 걸 보라고 군더더기 하나 없잖아. 바로 이게 서정의 극치야. 글 쓰는 사람은 이래야 돼. 독자의 가슴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면 실격이야. 좋은 문장은 고속도로처럼 읽는 사람에게 닿는거야”

(사진 - 신기수 사진전문기자)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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