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로봇, 소리’ 이성민, 그의 연기가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
[인터뷰] ‘로봇, 소리’ 이성민, 그의 연기가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
  • 김재범 기자
  • 승인 2016.01.28 0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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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김재범 기자] 언제부터 시작이었는지는 사실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곁에 있었던 것처럼 익숙함은 너무도 강하다. 익숙함과 강함이란 단어의 교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그것이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에는 확신이 선다. 그 익숙함이 자연스러움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설득이란 무기를 꺼내들게 된다. 이 당연하지만 결코 누구에게나 당연하다고 할 수 없는 연결의 고리는 배우 이성민에겐 당연함이다. 그는 그런 배우다.

이성민이 연기하면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피부로 와닿는다. 꼭 있었던 얘기처럼 다가온다. 분명 저런 사람이 꼭 있을 것만 같다. 어느덧 극 속에서 이성민은 사라지고 그가 연기한 캐릭터만 남게 된다. 이성민은 그렇게 극 안에서 자신을 서서히 지워버리는 마법을 부린다. 그가 선보이는 일상성이다. 영화 ‘로봇, 소리’ 속 해관이란 인물도 그랬다. 허무맹랑한 그 얘기가 이성민이란 단 한 명의 배우를 통해 완벽하게 증명한다. 해관이란 인물이 분명 어딘가에서 아직도 사라진 딸을 찾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의 아픔이 다가왔다.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영화 ‘로봇, 소리’의 개봉에 앞서 이성민과 만났다. 그는 언제나 인상 좋은 옆집 아저씨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의 웃음이 익숙했고 그의 목소리가 가까웠다. 그는 언제나 우리 주변을 연기하며 다가왔다. 특별함이 없는 그의 연기적 캐릭터의 베이스는 아무래도 이성민이란 인간의 선함이 깔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참 가깝고 선하고 친근하고 친해지고 싶은 인물이다.

“하하하. 너무 극찬을 해주시네요. 그저 배우는 작품 속에서 그 인물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뿐이죠. 그때그때의 모습을 대중들이 참 많이 좋아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뭐 아마도 ‘미생’의 모습을 가장 많이 기억해 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그것보단 ‘골든타임’때부터 좀 많이 알아봐 주셨죠. 그때는 사실 너무 이상할 정도였어요. 제가 느껴보지 못한 인기가 한 번에 오더라구요. 정신을 못차릴 정도였죠. 지금은요? 허허허.”

그때도 그랬다. 지금도 그랬고,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이성민은 소시민의 삶을 대변하는 모습으로 자리해 왔다. 여러 작품에서 그는 그랬다. 간혹 인상이 강한 캐릭터를 맡아 오기도 했지만 언제나처럼 이성민의 캐릭터였다. ‘로봇, 소리’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성민의 얘기를 전한 것처럼 기묘한 안성맞춤의 울림을 전했다.

“영화 속 해관이나 저, 비슷한 나이대라고 생각했죠. 더욱이 딸이 하나인 점도 같았어요. 더군다나 대구가 영화적 배경이란 점도 묘했죠. 제가 대구 태생은 아니지만 한 때 그곳에서 살아서 고향처럼 느껴져요. 뭐 사실 영화 속 해관처럼 딸에게 좀 엄하지는 못해요. 오히려 밥이죠 밥(웃음). 글쎄요. 평범한 중년의 가장이 엉뚱한 기계를 만났을 때 어떤 교감의 과정을 거칠까. 그 점만을 생각했어요.”

사실 이번 영화 속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아무래도 영화 내내 이성민의 상대역인 ‘로봇-소리’였다. 영화에서야 ‘인공지능’을 가진 캐릭터로 설정됐지만 실제는 그저 깡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벽을 바라보고 연기를 해야 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성민의 데뷔 첫 도전이나 다름 없는 셈이다.

“깡통? 하하하. 그래도 현장에선 하나의 배우였어요(웃음). 저 녀석이 좀 늦어서 문제지 그래도 참 잘해줬어요. 같이 연기하기는 뭐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사실 CG캐릭터라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연기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 놈은 존재라도 하니깐. 현장에선 이놈 대신에 ‘소리 삼촌’ ‘소리 이모’ 등이 존재했죠. 삼촌은 요놈을 조종하는 분, 이모는 소리 코디네이터였어요. 하하하. 연기를 하다가 아니면 촬영에 들어가면 다들 ‘소리 삼촌!!!’ ‘소리 이모!!!’ 이러면서 찾았다니까요.”

이번 영화 속에서 가장 뭉클하고 관객들의 가슴을 울릴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리’와 이성민의 ‘케미’다. 사람과 로봇 캐릭터의 호흡이 이 정도로 어울릴 줄은 그 누구도 상상을 못했을 정도다. 언론시사회와 일반 시사회 그리고 영화가 개봉한 뒤 이런 반응은 쏟아졌다. 그 배경에는 ‘소리’의 목소리 연기를 담당한 배우 심은경의 공이 가장 크다.

“저도 놀랐죠. 정말 연기가 될까란 점이 가장 고민이었어요. 진짜 ‘소리 삼촌’의 공도 컸죠. 연기에 맞춰서 정말 조종을 잘 해줬으니. 하지만 무엇보다 심은경의 목소리 연기가 압권이었어요. 잘 들어보시면 은경이가 목소리의 템포를 조절하거나 톤의 높낮이를 교묘하게 활용해요. 진짜 나중에는 그 목소리를 듣는데 저도 이 놈이 ‘진짜 살아있나’란 착각이 들었으니까요.”

워낙 정들이 들었는지 마지막 컷을 촬영한 뒤에는 묘한 감정까지 들었단다. 마치 사람과 비슷한 감정에 휩싸였었다고. ‘소리’가 자신의 전용 이동차량으로 이동하는 길에 동행까지 하며 교감을 나눴다. 최근에는 영화 홍보를 위해 다시 만나고 있다. 가끔씩 새 옷을 입고 나타나면 어색하기도 하다고.

“참 묘한 게 그 어색함이 아무래도 아빠의 마음으로 촬영을 했기에 그랬던 것 같아요. 사실 잘 그러지 않았거든요. 가족을 작품에 끌어 온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몰입이 안됐을 때 몇 번 우리 딸을 상상한 적이 있었죠. 극중 차안에서 딸 유주(채수빈)와 언쟁을 벌일 때는 내 경험을 대입했다. 딸과는 묘하게 싸워요. 중3이 된 딸과 평소 거리낌 없이 속마음을 드러내며 친하게 지내는 데. 모르겠어요. 가끔씩은 정말 서운하게 할 때도 있고. 하하하.”

이번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가장 화제가 될 부분은 아무래도 대구지하철 참사가 영화 속 등장하는 점이다.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트렸고,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초대형 참사였다. 10년이 넘게 지난 시간이지만 아직도 그 아픔을 기억하고 그 아픔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분들도 너무 많다.

“정말 조심스러웠어요. 혹시라도 누가 되지는 않을까 다가서는 것 자체가 진짜 힘들었죠. 신중하게 찍고 누가 되지 않게 다가섰는데 그 분(유가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아직도 마음이 무겁죠. 피해자들에게 행여 잘못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고 있는 것은 지금도 그렇고. 언론시사회 전날 대구로 내려가 추모비에 헌화도 했어요.”

그는 ‘로봇, 소리’에 이어 올해 상반기 최고 화제작 가운데 한 편인 ‘검사외전’으로도 곧바로 돌아올 예정이다. 놀랍게도 ‘검사외전’에선 권력의 상층부에 선 악인에 가까운 캐릭터를 연기한다. 악인 캐릭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악인과는 달리 좀 더 순도가 높은 쪽이란다. ‘로봇, 소리’의 부성애 넘치는 아빠에 이어 악인 캐릭터를 연달아 연기한다. 참 묘한 선택이다.

“하하하. 제가 충무로에서 거절 못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에요. 그게 성격인 것 같아요. 전 사람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전부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영화도 사람이 만들고. 시나리오도 사람이 쓰고요. 하다못해 우리 소리도 삼촌이 조종하고(웃음). 관계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비중이나 캐릭터의 중요성, 작품 속 출연 분량? 저한테 그런 것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저 연기가 좋고 연기에서 전 행복을 찾고 있어요.”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그는 자신의 딸과 얽힌 에피소드를 설명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행복해 보였다.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어느덧 배우 이성민은 없었다. 그저 아빠 이성민이 앉아 있었다. 그의 연기는 그렇게 다가서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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