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컬쳐] 아이돌(eyedoll)에 투영된 인류의 역사…마리킴 ‘SETI'전
[슬로우컬쳐] 아이돌(eyedoll)에 투영된 인류의 역사…마리킴 ‘SETI'전
  • 김동민 기자
  • 승인 2016.01.15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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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학고재갤러리)

[화이트페이퍼=김동민 기자] 커다란 눈동자의 소녀가 빤히 정면을 보고 있다. 그 큰 눈에는 초점이 없고 감정도 생명도 느껴지지 않는다.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심지어 입술 색깔도 각각 다르지만 눈동자는 한결같다. 그 소녀들의 눈은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 팝 아티스트 마리킴의 ‘아이돌’(Eyedoll)이다.

마리킴 개인전 ‘SETI'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 갤러리에서 지난 13일부터 열리고 있다. ’외계지적생명체탐사 프로젝트‘를 뜻하는 SETI 전은 마리킴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아이돌 캐릭터를 인류의 역사 속에 투영한 전시다. 189점에 달하는 작품을 창세기, 현재, 미래 3개 챕터로 나눠 구성했다. 마리킴은 “우리는 누구고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 (사진=학고재갤러리)

첫 번째 챕터인 창세기는 문명 이전 시대의 인간을 표현한다. 마리킴이 본 창세기는 이름도 개성도 없이 무한대로 사람들이 복제되는 시대다. 무엇 때문인지도 모른 채 그저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같은 유니폼이나 스카프를 착용한 아이돌 연작을 중점적으로 전시했다. 개별적 개체가 아닌 무리로만 존재했던 인류의 자화상이다.

▲ (사진=학고재갤러리)

두 번째인 현재 챕터에서는 개성을 갖게 된 아이돌을 만날 수 있다. 이 챕터의 아이돌들은 앞선 창세기의 ‘프로토 타입’에서 더 나아가 귀걸이나 리본, 헤어밴드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여기에 인류의 이기적인 욕심과 분쟁도 고개를 든다. 다른 이념으로 갈라진 남북한 군인의 복장을 하고 나란히 선 두 아이돌에게서 그 고통이 느껴진다.

▲ (사진=학고재갤러리)

마지막 미래 챕터에는 황폐화된 지구를 떠나 새로운 외계 행성을 향하는 아이돌의 모습을 담았다. 마리킴은 이 챕터에 대해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끊임없이 하늘을 쳐다보며 저기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 한다”고 설명했다. 인류의 기원 또한 외계에서 왔으니 다시 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지구를 떠난 아이돌은 더 이상 여자아이 모습이 아닌 만화경을 연상시키는 추상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 마리킴이 가장 큰 애착을 갖는 작품은 ‘HAL9000'이란 제목의 비디오 설치물이다. 마리킴은 이 작품에 대해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한 동명의 인공지능 로봇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커다란 철판을 세워 앞면에는 우주로 날아오르는 아이돌, 뒷 면에는 고대 상형문자가 흘러내리는 영상을 연출했다. 과거와 미래가 혼재된 블랙홀 속에 들어온 듯 낯선 분위기가 느껴진다.

▲ (사진=학고재갤러리)

마리킴이 바라보는 인류의 미래는 어둡다. 지구 밖 다른 세계를 꿈꾸지만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인간이 계속 개체수를 늘려나가는 건 지구를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썩지 않는 쓰레기를 만들고 원전을 짓다 보면 인류는 더이상 지구에서 살 수 없을 것"이란 경고도 덧붙였다. 그렇게 SETI 전의 수많은 아이돌들은 우리 인류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전시는 다음달 24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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