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이 동원된 블랙코미디 '참새 죽이기'
300만이 동원된 블랙코미디 '참새 죽이기'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6.01.1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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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인물편>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제작팀 지음 | MBC씨앤아이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1958년부터 1960년까지 3년 사이에 중국에서는 4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 중국 전역이 이렇게 끔찍한 재앙에 휩싸이게 된 이유는 뭘까? 바로 참새 때문이었다.

‘미처 몰랐던, 알면 알수록 솔깃한’ 이야기들을 엮은 <서프라이즈: 인물편>( MBC씨앤아이. 2016)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책에 따르면 1949년 국가 주석이 된 마오쩌둥은 식량 증진 정책에 신경을 썼다. 1958년 어느 날 한 농촌 마을을 방문한 그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얼마 뒤 새로운 부서를 신설하는데 바로 ‘참새 섬멸 총지휘부’였다. 그는 참새들이 벼 이삭을 쪼아 먹는 것을 보고 참새 때문에 쌀 수확량이 줄어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참새를 해로운 새로 규정하고 전쟁을 선포했다.

“참새 섬멸 총지휘부에서는 참새가 곡식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대해 집중 연구했다. 그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시 쓰촨성에 있는 참새는 총 320만 마리, 만약 참새 한 마리가 일 년에 2.4kg의 벼이삭을 쪼아 먹는다고 하면 쓰촨성에서만 매년 7,680톤의 쌀을 손해 보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이 일 년 동안 평균 240kg의 쌀을 소비 한다는 기준으로 인구 3만 2천 명의 일 년 치 식량이기도 했다. (중략) 중국 전역에 날아다니는 참새가 중국인 약 70만 4천여 명이 일 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먹어 치우는 것이었다.” (p.116)

1958년 4월 19일 새벽 4시. 베이징 시민 총 300만 명이 투입된 참새 소탕 작전이 시작됐다. 참새가 많이 출현하는 지역에 독극물이 든 과자를 뿌려놓았고 총을 든 명사수들이 잠복했다. 시민들은 빗자루와 몽둥이를 들고 논밭으로 숨어들었다.

새벽 5시, 총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시민들은 꽹과리와 세숫대야 등을 쳐댔다. 놀란 참새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허공을 날다 추락하고 총에 맞아 죽는 참새들이 속출했다. 이날 하루에 소탕한 참새는 총 8만 3,249마리였다. 이후 사흘 만에 40여만 마리가 더 잡혔다.

이 작전은 전국으로 퍼져 무려 2억 1천여마리의 참새가 죽었다. 상황 보고를 받은 마오쩌둥은 농산물 수확량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달랐다. 오히려 쌀 수확량이 대폭 줄었다. 1958년 한 해에만 전국에서 172만 명이 굶어 죽었다.

이러한 대기근의 원인은 바로 먹이사슬의 파괴 때문이었다. 참새가 줄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해충들이 쌀을 갉아 먹은 것. 결국 마오쩌둥은 참새 소탕 작전을 중단하고 소련 정부에서 참새 20만 마리를 긴급 공수했다. 이 작전의 실패로 그는 권력 2선으로 물러나게 된다. 참새 소탕 작전으로 인한 대기근은 역사상 최악의 기근으로 세계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어 있다. 한 통치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억울하게 죽은 참새와 사람들에게 기가 막힌 사건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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