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작가 한경아 "10~20대 땐 우는 일 밖에 없었어요"
[인터뷰] 작가 한경아 "10~20대 땐 우는 일 밖에 없었어요"
  • 북데일리
  • 승인 2007.10.0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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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지레 꿈을 포기해온 30대 여자들을 위한 당당한 삶의 지침서, <여자의 진짜 인생은 30대에 있다>를 쓴 작가 한경아. 최근 그녀는 소설 <죽이는데>(천케이. 2007)를 냈다.

책은 어둠 속에 갇힌 10대 소녀를 감싸 안은 20대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가가 보석 전문 기자로 일하면서 틈틈이 2년에 걸쳐서 쓴 글이다. 섬뜩하고 냉소적인 표제에 걸맞게, 10대 미혼모와 낙태라는 우리 사회의 어둡고 무거운 현실이 배경이다.

최근 시내 한 카페에서 작가 한경아를 만났다. 소설로 짐작되던 것과는 달리, 그녀의 첫인상은 밝고 명랑한 소녀 같았다. 하지만 ‘17살 얼짱 소녀 성매매 사건’이 화두로 떠오르자 곧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드라마 대신, 매일 저녁 뉴스를 챙겨보며, 아동, 여성 문제 등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는 한경아. 그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매서웠다.

작가는 소설 <죽이는데>를 통해 ‘어째서 여성의 몸에 칼을 댈지를 사회적인 시선이나 남자의 욕구에 따라 결정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소설 속 10대 미혼모인 ‘솔이’는 오랜 고뇌 끝에 결국 낙태를 선택한다. 이에 대해 한경아는 처음부터 정해둔 결말이었다며 이렇게 잘라 말했다.

“10대 미혼모는 도저히 혼자 살아 갈 수가 없어요”

사회의 편견이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는 10, 20대 미혼모들을 낙태로 몰아간다는 것. 작가는 미혼모는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으로 보면서,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미혼부는 강한 부성애를 지닌 책임감 있는 남자로 높이 평가하는 이중적인 잣대 또한 강하게 비판했다.

자신의 몸에 칼이 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낙태를 강요하는 남성들에 대한 고발 역시 잊지 않았다. 선주를 임신 시킨 아버지가 낙태 시술 장면을 지켜보도록 설정한 소설 속 장면 역시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 대목이다.

“선주의 수술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야 했다. 선주는 두 다리를 힘껏 벌리고 내 앞에 누웠다. 차가운 금속이 자궁 속으로 들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얀 시트 위에 붉은 핏덩어리가 몇 개 놓였다. 구역질이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 본문 중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 여자에게 쉽게 낙태를 강요하는 남자들의 간담이 서늘해질 만한 충격적인 장면이다. 한경아는 너무나 생생한 낙태 수술 묘사로 주변 사람들에게 오해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런 여잔 줄 몰랐다는 말도 많이 들었죠. 많은 사람들이 소설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라는 당찬 의견을 덧붙였다.

그는 여성 성에 대한 억압을 비롯해, 대학시절 부터 사회적인 약자에게 절로 관심이 갔다고 전했다. 게다가 어떤 사람의 악한 기운을 감지하는 직감을 타고났단다. 오감이 아닌 육감, ’식스 센스‘를 지녔다는 젊은 작가다.

“저도 모르게 낯선 사람에게서 갑자기 안 좋은 기운이 확 느껴져서 소름이 돋을 때가 있어요. 아! 저 사람은 언젠가는 나에게 해를 입히겠구나! 그런 느낌이 들면, 무조건 피해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제 직감을 믿는 편이에요.”

나쁜 사람은 눈동자 색을 보면 알 수 있다며, 내 눈을 빤히 쳐다보는 명랑 소녀 같은 그녀. 밝고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밝히는 한경아. 그녀에게 감추어진 어두운 면은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한 없이 울기만 하던 10, 20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의 솔직한 고백이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빨리 30대가 되고 싶었어요. 10, 20대는 정말 우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별일도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힘들고 버겁게만 느껴졌는지...”

당시엔 현실이 너무 버거워서 아무리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아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서른이 되자, 비로소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감성이 회복되었단다.

“서른이 넘어서면서 어떤 일이 닥쳐도 무턱대고 울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이건 울 일이 아니다.’라고 스스로 다독이죠.

그녀가 전작 <여자의 진짜 인생은 30대에 있다>를 통해서 ‘서른’이라는 나이게 집중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서른 살 이후 회복된 그녀의 감성은 다섯 개의 아름다운 동화로 소설에 담겼다.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동화는 소설의 어둡고 답답한 현실을 몽환적으로 보여준다. 내용에 꼭 맞는 일러스트 또한 직접 그렸다. 비현실적인 동화를 통해서 현실을 더욱 잘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동화를 읽으면서, ‘그래 결국 이게 현실인데’라고 생각해주었으면 했어요.”

소설과 동화를 쓰며 디자인 전문 기자로도 일하고 있는 재주 많은 작가 한경아. 언젠가는 보석 디자이너로서 개인전도 꼭 열고 싶다는 욕심 많은 여자다.

오는 10월에는 새로운 형식의 자기계발서도 낼 예정. 부족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하다며 활짝 웃는 그녀.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식스 센스를 보여줄지 사뭇 기대된다.

[윤지은 시민기자 wisej@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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