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앞에서 입고 있던 브래지어를 찢은 이유
기자 앞에서 입고 있던 브래지어를 찢은 이유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2.0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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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피아나> 파트리크 오우르제드니크 글 정보라 옮김 / 열린책들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유럽에서 20세기에는 수많은 발명품들이 등장했다. 인간이 최초로 달에 착륙하는 과학적인 발전도 이룩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은 1․2차 세계 대전과 끔찍한 인종 학살이 자행된 ‘미친 세기’이기도 했다.

‘짧게 쓴 20세기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유로피아나>(열린책들. 2015)는 체코 작가의 소설이다. 책은 두루마리 휴지의 발명부터 대규모로 이루어진 유대인 학살까지 등장한다. 역사적 사실들과 일화들을 나열할 뿐 주관적인 의견을 덧붙이지 않는다. 시간 순서를 따르지도 않는다. 건조하게 이어지는 장문으로 풍자와 고발, 냉소를 느끼게 한다. 이런 식이다.

“20세기가 끝날 무렵 산업화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에 두 번 혹은 더 자주 목욕하거나 샤워를 하게 되었고 누구나 다 수세식 화장실과 뜯어서 쓰는 화장실용 휴지를 갖게 되었다. 뜯어서 쓰는 화장실용 휴지는 1901년 스위스의 종이 제조업체에서 발명했는데 그날은 스위스 정부가 이탈리아 왕을 암살한 것으로 의심되는 어떤 무정부주의자를 이탈리아 정부에 넘겨준 날과 같은 날이었고 신문에서는 화장실용 휴지가 소박하지만 중요한 발명품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1914년에 어떤 프랑스 여자가 브래지어를 발명했는데 신문에서는 브래지어의 발명이 더 활동적이고 현대적인 삶을 갈구하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생활 방식을 의미하며 코르셋의 소멸은 온갖 편견에 얽매였던 구세계의 종말을 표현하는 거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1945년에 미국 사람들은 가슴이 작은 여성을 위해서 컵 안에 솜을 댄 브래지어를 발명했다. 그리고 1968년에 서구의 여러 도시에서 여자들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시위를 하다가 기자들 앞에서 남성과 여성의 권리가 같아야 함을 보여 주려고 입고 있던 브래지어를 일부러 찢어 버렸다." (p.24~p.25)

책은 실제 있었던 20세기 유럽 현대사를 ‘실제로 있었을 법한 이야기’들로 버무려 썼다. 따라서 이 작품은 ‘픽션fiction'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사실인지 허구인지 확인할 길 없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것이 ’이야기의 마술이자 텍스트의 힘‘이라는 게 옮긴이의 말이다. 이 책 자체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20세기에 대한 은유 같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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