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배달원, 좋아하지만 되고 싶지 않은 게 현실”
“자장면 배달원, 좋아하지만 되고 싶지 않은 게 현실”
  • 북데일리
  • 승인 2007.08.2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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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짜장면 불어요!> 작가 이 현

“연극이 시작되기 3분 전, 무대 뒤에 선 신인 배우 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성큼성큼 무대로 걸어 나간다. 분장도 유치하고 인물도 못났다고 사람들이 웃어 대더라도 까짓 이 한마디면 그만이니까” - <짜장면 불어요!> 여는 글

[북데일리]작가 이 현의 글은 건강하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잔병치례는 물론, 오래 곪은 깊은 병까지 힘차게 꺼내놓는다. ‘창작과 비평’이 제정한 `제10회 좋은 어린이 책` 창작 부문 대상작 <짜장면 불어요!>(창비. 2006)로 인정받은 이 현은 2004년 제13회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분에 단편 <기차, 언제나 빛을 향해 경적을 울리다>가 당선되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것이 이 현 문학의 가장 큰 특징. 싸움하는 부부, 말 안 듣는 아이, 경제 고를 겪는 가정 등 일상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만만치 않은 작가다.

화제의 스테디셀러 <짜장면 불어요!>와 관련 이 현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글자 한 땀 한 땀에 힘찬 기운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다음은 작가와 나눈 1문 1답.

질)사회 문제 여럿을 던지고 있습니다. 작품집 ‘짜장면 불어요!’를 통해 가장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답)못 배웠다는, 가난하다는, 험한 일을 한다는, 외모나 행동이 거칠다는 잣대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물론 그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체가 변화해야겠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가 스스로를 긍정하는 것 역시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편견으로 가득 찬 잣대 때문에 주눅 들고 상처받는 대신, 그런 편견이 얼마나 어리석고 비뚤어진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긍정적인 에너지. 이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세상의 위선과 편견을 이겨 내주었으면 했습니다.

질)등장인물이 매우 친숙합니다. 특히 ‘짜장면 불어요!’의 기삼과 용태가 그렇습니다. 집필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답)아이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잊혀져 있는 사람. 왜곡되게 인식되어 있는 사람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소재를 찾기 위해 아파트 단지 공원길에 앉아서 지나가는 아이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도 했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삼십 분만 공원길에 앉아 있어도 서너 번은 마주치는 사람, 자전거를 타도 대여섯 번은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는 걸요. 그게 바로 배달원 ‘기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짜장면을 가져다주는 사람이지만 손가락질하거나 꺼려하는 사람이었죠. 자장면 배달원이 없으면 아쉬워 할 거면서, 누구도 자장면 배달원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러기위해서는 기삼이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 알려주어야 했죠. 기삼이를 비웃고 손가락질하는 어른들의 어리석음을 들려주고자 이 작품을 썼습니다.

질)‘짜장면 불어요!’에 대한 반응은 매우 다양한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잊지 못할 일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답)책을 읽고 나서 자장면이 너무 먹고 싶어서 한 그릇 시켜먹었다는 얘기가 가장 유쾌하고 좋았습니다. 반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투철한 직업 정신을 교훈으로 얻었다는 반응은 좀 당황스러웠답니다. 그건 제 생각하고는 좀 달랐기 때문입니다.

질)작품집에 실은 다섯 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이야기가 있다면요.

답)굳이 꼽자면 ‘지구는 잘 있지?’입니다. 개인적으로 에스에프라는 장르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죠. 앞으로도 더 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가장 정성을 기울이고 고민을 많이 하면서 쓴 작품이어서 애착이 갑니다.

질)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요.

답)철이 들면서부터 죽 작가가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스무 살이 넘고서는 거의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거의 잊었어요. 그래도 무의식중에 생각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마다 잊지 않고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찾아보고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사보곤 했으니까요. 그러다 서른다섯 살이 되었고, 새해를 이틀 앞둔 어느날. 친구들하고 송년 모임을 가지게 됐습니다. 다들 술이 거나하게 올랐을 때 내년에 하고 싶은 일을 말하게 됐어요. 차례가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내년에는 소설 한 편을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뜬금없는 소리라 친구들도 웃고 나도 웃었어요. 그런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뱉은 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 때 깨달았죠. “아, 내가 여전히 글을 쓰고 싶은 거구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이거였구나. 그렇다면 일단 해보자. 되든 안 되든 쓰자, 쓰자, 쓰자”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질)작가가 된 것에 만족하십니까.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답)세상에서 밥벌이보다 더 중요하고 위대한 일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밥벌이가 내가 꿈꾸던 일이라면, 대단한 행운인 거죠. 그러니 만족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새로운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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