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작가에게 황홀한 음식 '골곰짠지'
성석제 작가에게 황홀한 음식 '골곰짠지'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1.30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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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성석제 글 / 한겨레출판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기억조차 나지 않는 아득한 내 생의 어느 한때, 나는 소풍을 갔다. 아름답고 정다운 여성들의 손을 번갈아 잡아가며 20리길을 타박타박 걸어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는 공간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시간은 내 존재의 일부로 영원히 남아 있다.

나 역시 어린 누군가에게 그런 순간을 선물하고 싶다. 그건 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지상의 선물인 것이니. 사진을 함께 남겨준다면 상상의 날개라는 덤도 함께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쉽게 사라져버릴 디지털카메라의 파일이 아니라, 인화해서 세월과 함께 천천히 빛이 바래갈 사진으로.” (p.209)

소설가이자 산문작가인 성석제의 산문집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한겨레출판. 2015)가 나왔다. 책은 ‘한겨레’에 연재했던 다양한 글과 에세이들을 한 데 묶었다. 그 중 음식에 대한 그의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는 글들이 많다.

“맛은 철저히 개개인의 주관적인 감각, 경험으로 느끼는 것이다. 어떤 음식을 대하는 사람의 조건은 그때마다 다르다. 같은 음식을 같은 장소에서같이 먹는 사람끼리도 평가가 엇갈린다. 수많은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평균적인 맛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개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음식 가게쟁이’를 탓할 수 없다는 말이다. 어떤 음식을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맛있게 먹었을 때의 그 맛을 찾는 건, 그때의 자신을 찾는 것과 같다. 잊지 못할 첫사랑을 찾아가서 왜 모습이 달라졌느냐고 항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p.65)

성 작가는 알음알음으로 살며시 다닌다는 음식점들과 ‘천국의 다른 이름’이라고 부를 정도인 단골집을 소개한다. 또한 진짜 원조의 맛의 비밀은 무엇인지 들려준다. 특히 그가 ‘고향의 황홀한 맛’이라고 전하는 음식이 있다. 그의 고향 상주에는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골곰짠지라는 게 있다. 얼핏 보면 생김새가 무말랭이 무침처럼 보이지만 김장 김치처럼 제대로 발효 된 음식이다. 따라서 골곰짠지는 국물이 겉에만 밴 무말랭이보다 훨씬 촉촉하고 깊은 맛이 난다.

"골곰짠지를 씹으면 눈 밟을 때나는 소리와 비슷한 ‘꼬드득(오도독)’ 소리가 난다.(중략) 그 실질의 소리는 가까이 있는 우리의 뇌리에 도달해서 또 다른 소리를 불러일으킨다. 골곰짠지와 우리 각자의 어린 시절이 한 손씩 내밀어 추억과 본연의 맛이라는 박수 소리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p.255~p.256)

책엔 고향 집의 어린 시절 풍경부터 이십 대 대학 시절 기형도 시인과의 에피소드, 남반구 칠레의 토레스델파이네 계곡에서의 느낌까지 작가에게 특별했던 경험이 담겨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민혜 씨의 독특한 그림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다만 성 작가의 얼굴 그림이 실제와 닮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흠이다. 표지 속 남자 그림을 보라. 성 작가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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