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지식] 엄동설한에 먹어야 제맛 육개장은 원래...
[책속의 지식] 엄동설한에 먹어야 제맛 육개장은 원래...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11.27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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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한국사> 주영하 글 / 휴머니스트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겨울에 뜨끈한 국물 생각은 당연하다.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를 소개한 책 <식탁 위의 한국사>(휴머니스트.2013)에 소개된 ‘엄동설한에 먹는 육개장 맛’에 대한 찬사가 실감 난다. 긴 문장이지만 읽다 보니 저절로 군침이 도는 대목이다. 마지막 글쓴이의 호기로운 경험담까지 곁들여져 글로 추억과 음식을 먹는 셈이다.

“국물을 먼저 먹은 굵다란 파가 둥실둥실 뜨고 기름이 뚝뚝 듣는 고음국에다 곤 고기를 손으로 알맞게 찢어 넣은 국수도 아니요 국밥도 아닌 혓바닥이 델 만치 뜨겁고 김이 무렁무렁 떠오르는 시뻘건 장국을 대하고 앉으면 우선 침이 꿀걱 넘어가고 아무리 엄동설한에 언(凍) 얼굴이라도 저절로 풀리고 온몸이 녹아서 근질근질 해진다.

어쨌든 대구육개장은 소선 사람의 특수한 구미를 맞추는 고초가루와 개장을 본뜬 데 그 본래의 특색이 있다. 까딱 잘못 먹었다간 입설이 부풀어서 애인하고 키쓰도 못하고 애매한 눈물까지 흘리리라.

내가 대구서 중학 시절에 인토레런스(Intolerance)란 명화(名畫)를 구경하고 열두 시나 되어 손과 발이 얼어서 모통기름으로 벌벌 떨고 뛰어오다가 그때 친해 다니던 육개장집에 들어가서 단숨에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는 그만 식곤증(食困症)에 취하야 서 말지기 뚜껑을 열 때마다 무슨 괴물의 입김처럼 확확 내치는 장국 김에 설여서 반만 익은 토마도 빛같이 된 주인마누라 무릎을 베고 그대로 잠이 들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때 먹던 육개장이 새롭고 철없는 어린 그때가 그리워진다.” -109쪽~110쪽, 잡지 <별건곤>의 필자 ‘달성인’의 글

책은 육개장의 실질적인 대중화는 20세기 들어와서야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 건강한 소를 식용 목적으로 도살하는 행위를 금지하던 우금(牛禁)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왕조의 멸망과 함께 비로소 소를 노동의 도구이자 먹거리로 생각할 수 있는 합법의 시대가 열린 것.

또한, 책에 따르면 육개장은 본래 개장에서 변이된 것이다. 요즘은 보신탕이나 사철탕으로 부르는 개고기를 육개장에 넣어 먹었다는 것. 18세기 무렵에 개장은 한양의 외식업에서 무척 유행했던 음식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개고기를 먹는 일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고 외국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19세기 중반부터 식민시기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소고기나 닭고기를 넣는 방법으로 변이된 것이다.

책은 육개장이라는 이름 자체에 이미 탄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지난 100여 년간 한국인의 식탁에 오른 음식을 통해 바라보는 문화사는 음식에도 역사가 깃들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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