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글 양억관 옮김 / 민음사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문체가 간결하고 세련됐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다. 그의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 2013)는 철도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 남자 ‘쓰쿠루’가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해 순례를 떠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독과 상실의 아픔이 느껴지는 문장이 있어 소개한다.
“가 버린 시간이 날카롭고 긴 꼬챙이가 되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소리 없는 은색 고통이 다가와 등골을 차갑고 딱딱한 얼음 기둥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아픔은 언제까지고 같은 강도로 거기 머물렀다. 그는 숨을 멈추고 눈을 꼭 감은 채 가만히 아픔을 견뎌 냈다. 알프레트 브렌델은 단정한 연주를 이어 갔다. 소곡집은 제1년 스위스에서 제2년 이탈리아로 옮겨 갔다.
그때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혼의 맨 밑바닥에서 다자키 쓰쿠루는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p.363~p.364)
우리의 마음은 호수이다. 수면 아래엔 상처와 고통, 절규가 떠다닌다. 그것없이 호수의 고요함은 이룰 수 없다. 삶의 완숙한 관조가 돋보이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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