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배운 시, 제대로 알고 있나
우리가 배운 시, 제대로 알고 있나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11.23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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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글 / 휴머니스트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시를 즐기기란 쉽지 않다. 시를 언어영역의 문제풀이 대상으로 배웠던 이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휴머니스트.2015)는 교과서의 '해설'대로 시를 대했던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시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시인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에 대한 내용을 보자. 먼저 시 전문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 두 점을 치는 소리/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24쪽~25쪽 중에서

저자는 이 시를 현실에 대응할 때 서정성이 어떻게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 준 명시로 손꼽혀 왔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정작 이 시의 일반적인 풀이는 잘 못되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따뜻한 인간애’, ‘인간적 진실의 따뜻함과 아름다움’이 시의 주제라는 부분에서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시의 진정한 주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즐겨야 할까.

책에 따르면 이 시의 초점은 가난한 노동자의 따스한 마음에 가닿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한 현실을 향한 것이다. 특히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대목은 울부짖듯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게 하는 우리 현실에 대한 분노와 자조야말로 진정한 주제다.

저자는 시의 주제를 짚어내고 ‘가난한 사랑노래’는 우리에게 불평등의 기원이 결코 당연하거나 자연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기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절절히 들려주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시월애>를 보면 주인공 은주의 대사가 있다. 은주는 사람에겐 숨길 수 없는 게 세 가지가 있는데, 바로 기침과 가난과 사랑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가난’에 주목한다. 가난은 못 숨긴다는 말, 어쩌다 큰돈을 써서 새 옷을 사 입어도 가난은 드러난다는 부분은 정말 분하고 슬픈 일이라는 것이다.

책은 이처럼 그동안 엄숙주의 아래 시를 배워왔던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던지며 가슴으로 시를 즐기는 방법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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