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애인` 50인50색 톡톡 인터뷰
`우리시대의 애인` 50인50색 톡톡 인터뷰
  • 북데일리
  • 승인 2005.09.2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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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각 분야의 저명 인사들의 인터뷰 모음집이 출간됐다.

`시대의 애인 - 우리가 사랑한 50인`(2005 안그라픽스)은 지난 89년부터 2005년가지 아시아나 항공 기내지인 `아시아나 컬쳐`에 게재되었던 인터뷰 기사 가운데 50편을 선정해 엮은 책이다.

안성기, 조수미, 박정자, 김훈, 이어령, 정트리오 등이 기꺼이 주인공이 되어주었고 외국인으로 조르지오 아르마니, 마이클 케냐, 게하르트 슈테블러도 참여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실린 만큼 인터뷰 방법도 기사 내용도 또한 사진도 각양각색이다. 그 누구에게도 일정한 틀이나 기존 정석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조금 더 독특하게 보여주기 위한 편집부의 배려가 느껴진다.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전면 흑백으로 처리되었다는 것 뿐이다.

발레리나 강수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가면 도시 여기저기에서 강수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도로에는 `강수진 전차`가 다니고 화원에는 `강수진 난(蘭)`이 고객들을 불러 모은다.

발레리나들에게는 꿈의 대상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공연을 펼칠 때면 항상 그 중심에 강수진이 있다. 이같은 위치에 오르기까지 그녀를 지탱해 준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험상궂은 발이다. 아름다운 외모와 미소와는 쉽게 매치되지 않는 거의 기형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러나 강수진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루 10시간씩 연습에 몰입하며 발을 혹사시킨다. 연습이 끝난 뒤 토슈즈를 벗고 굵은 땀방울을 손으로 훔친다. 그리고 토슈즈에 난 구멍을 메꾸며 태연하게 자신의 발을 바라볼 뿐이다.

소설가 최인호는 세대론을 거부한 영원한 글쟁이다. 67년 정식데뷔 이후 한 번도 펜을 놓지 않았다. 끊임없이 쓰고 또 쓴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노화는 그의 작품에서만 존재할뿐이다.

월간 샘터에 `가족`이란 소설을 연재한 지 30년이 됐다. 죽을 때까지 소설을 쓰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말해주듯 소설가 최인호란 사람은 항상 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다.

명랑만화의 대가 박수동은 이제 60세를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그의 이름 앞에는 `오성과 한음` 그리고 `고인돌`이 따라다닌다. 얼마 전에는 서울 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코믹어워드 부분 대상 수상자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심사위원단은 그가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놓았다는 데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박수동 만화의 특징은 까르르 웃음 뒤에 비집고 나오는 시린 칼날이다. 분명히 코미디를 그렸는데 다시 한 번 읽어보면 가슴 시린 현실이 눈 앞을 채운다. 시장에서 좌판을 벌이는 어머니, 고물장수, 번데기 장수 아저씨, 엄마의 품안이 그리운 고아들이 주인공들이다.

결코 잘 생기지 못했지만 친구들과 엄마 찾아 우주로 나섰던 고인돌은 70~80년대 어린이와 어른들의 우상이자 스타였다. 만화가가 되기 전 초등학교 교사였던 박수동은 지금 대학 강단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설치미술가 이불.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물어보아야 할 첫번째 질문은 "본명이세요?"였다. 그녀와 작품이 매스컴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이제는 상대방이 먼저 아는 척한다.

얼마전 샘표간장이 공장 한켠에 갤러리를 마련해 놓고 설치미술전을 열었다. 대학생들과 지역주민, 유치원생과 학부모들이 그녀의 작품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 패션잡화업체 쌈지도 경기도 파주에 쌈지미술창고를 열어 이불의 작품을 전시하는데 동참했다.

이불은 현대 미술의 여전사, 문화게릴라로 통한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의 장식성과 도발성때문이다. 그간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닮은 형상을 시작으로 성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커다란 풍선, 유니폼을 입은 소녀와 이를 이용하는 남성의 일탈 등을 누구 눈치 한 번 보지 않고 선보였다.

이불은 자신에게 도전하고 자신을 뒤집어 버리는 순간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신을 이긴다는 것은 어렵다는 말을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는 아직도 우리에게는 축구선수다.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은 말쑥한 모습보다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월드컵으로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 그는 방송 출연을 극도로 자제했다. "나는 방송인이 아니라 축구 선수다"라며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지금도 축구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가 은퇴한 뒤 대다수 팬들은 홍명보 없는 한국 축구를 걱정했다. 그러나 애써 아쉬움을 억누르는 이들도 있었다. 홍명보의 뒤를 이를 거물이 반드시 나타날 거라고 자위하면서

주인공 50명의 뒤를 받쳐준 이들은 33명의 필자와 23명의 사진작가 그리고 편집팀이었으며 독자들은 읽는 즐거움으로 그에 대한 보답을 했다.

(사진 = 발레리나 강수진, 소설가 최인호, 축구인 홍명보) [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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