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위 조작 논란, 김훈 작품 속 작가적 고뇌 서려
순위 조작 논란, 김훈 작품 속 작가적 고뇌 서려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10.08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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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 출판계는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 논쟁으로 한바탕 몸살을 앓았다. 일파만파 퍼져버린 논란의 중심에 선 작품은 김훈 작가의 <라면을 끓이며>(문학동네.2015)다. 출판되기 전부터 작품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탓이다. 작품과 작가의 노고가 논쟁의 그늘에 가려지는 건 아닐는지.

논란을 떠나, 작품을 마주해보자. 책은 작가의 절판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와 <밥벌이의 지겨움>, <바다의 기별>에 실린 글 일부와 새로 쓴 원고 400매가량을 보태 묶어낸 산문집이다. 특히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던 장면은 작가적 고뇌가 담겼다.

‘파도와 빛이 스스로 부서져서 끝없이 새롭듯이 내 마음에서 삶의 기억과 흔적들을 지워버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언어들과 더불어 한 줄의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인지를, 나는 울진의 아침 바다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중략) 밤마다 별이 돋고 달이 떠서 흔들리는 물 위로 달빛은 긴 고랑을 이루며 어두운 수평선 쪽으로 펼쳐졌다.

울진 바다에서 나는 바다의 불가해한 낯설음에 압도되어서 늘 지쳐있었다. 수평선 너머로부터, 내가 기다리는 새로운 언어는 날아오지 않았고, 내가 바다 쪽을 바라보는 시간은 날마다 길어졌다. 나는 조금씩 일했고 많이 헤매었다. 나의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일보다 헤매기가 더욱 힘들었다.’ - 50~51쪽, 바다 중에서

책에 따르면 울진 바다에서 짐을 싸서 달아나듯 다시 도시로 향했던 그는 또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서해안으로 옮겨갔다. 작은 섬에 몇 달을 머물면서 무수한 많은 문장을 버리고 또 버렸으리라. 해가 지고 다시 거처로 돌아온 그의 앞에 펼쳐진 풍경은 이번 논란처럼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말리던 생선과 빨래를 모두 거두어들여서 건조대와 빨랫줄은 비어 있었다. 바다에 나갔던 새들이 숲으로 돌아갔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는 원고지의 무수한 빈칸이 펼쳐져 있었다.’ -69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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