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원도 기업도 청년도 불행한 '청년희망펀드'
[기자수첩] 은행원도 기업도 청년도 불행한 '청년희망펀드'
  • 김은성 기자
  • 승인 2015.09.24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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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김은성 기자] 한 은행원이 물었다. 청년실업이 은행원 탓이냐고. 일부 은행이 공개 망신을 당했다. 청년희망펀드를 은행원 가족에까지 가입하도록 압박해서다. 독재정권 시절에나 볼 수 있던 관제금융에 국민들은 화들짝 놀랐다.

은행의 이같은 행태는 예견된 일이다. 대통령이 펀드를 제안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은행은 매일 펀드 가입실적을 국무조정실에 보고해야 한다. 정부의 '은행 줄 세우기' 불똥이 애꿎은 은행원에게 튄 셈이다.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산하 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도 눈치를 보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펀드에 20억원을 기부한 후 눈치를 보고 있는 분위기"라며 "펀드가 최소한의 모양새를 갖추려면 결국 대규모 재원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 마냥 모른 척 할 수만은 없다"고 토로했다.

정작 희망펀드는 실체조차 없다. 이름은 펀드인데 내용은 기부금이다. 펀드에 투자한 사람은 원금과 운용수익을 돌려받지 못한다. 희망펀드를 운영할 청년희망재단(가칭)도 설립되지 않았다. 돈을 운영할 주체도 운영 방식도 정하지 않고 돈부터 걷고 있는 것이다.

반강제 기부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행태를 정부 관계자조차 신뢰하지 않는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이명박 정권 시절 청년실업 해결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고졸사원 채용처럼 반짝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는 "당시 이명박 정권이 밀어붙인 고졸채용에 상당수 기업들이 부정적이었다"며 “결국 정권이 바뀌면서 고졸채용도 없어지고 당시 입사한 직원도 대부분 계약이 만료됐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사회지도층이 노블리스오블리주 정신에 따라 청년의 아픔을 해결하는데 나서자는 취지”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오히려 청년의 아픔을 키우는 건 정부다. 정부는 최근 노사정 합의로 청년의 미래 일터를 질 낮은 일자리로 만들었다.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것이 노사정 합의의 골자다. 8개 청년시민단체들은 "이번 야합은 청년들의 고용불안을 키워 더 큰 고통만 줄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청년의 미래 일터를 망가뜨려 놓고 기껏 제시한 것이 국민을 상대로 한 기부금 모금이다. 정책과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정부가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겠다는 것이다. 반강제 기부금 모음이 정작 기업의 청년일자리 만들기에 발목을 잡는 건 아닌지, 애먼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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