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기억할 수 있다고?
모든 걸 기억할 수 있다고?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8.0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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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의 <개인적 기억>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기억은 언제나 주관적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새롭게 편집되는 경우도 많다. 만약 기억을 잃어버리는 삶과 모든 걸 기억하는 삶이 존재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할까? 윤이형의 <개인적 기억>(은행나무. 2015)은 후자의 삶을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소설은 2058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돌아온 마흔일곱 살 지율이 보르헤스의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떠올리며 시작한다. 자신에게 그 소설을 읽어주던 목소리를 기억하며 필사를 한다.

 지율은 열한 살이었던 2022년 모든 것들을 기억하는 ‘과잉기억증후군’ 진단을 받는다. 어떤 사물을 마주했을 때,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와 관련된 모든 기억이 살아나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런 아들을 감당할 수 없었던 엄마는 집을 떠나고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던 지율도 독립한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의대를 선택했지만 지율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난독증에 걸리고 스물다섯 살엔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 은유를 만나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은유는 지율의 능력을 특별하게 여기고 난독증에 걸린 지율에게 보르헤스의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읽어준다.

 은유는 지율과 반대로 아무 것도 기억하지 않는 여자였다. 자신을 사랑하면서 지난 모든 사랑을 함께 떠올리는 남자와 어떤 것도 기억하지 않는 여자의 사랑은 때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어떤 삶도 한 줄로 요약될 수 없다고 믿는 지율에게 은유의 삶은 너무도 단순하다.

 은유를 사랑하면서 지율은 ‘과잉기억증후군’ 을 이겨내고 싶었다.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였다. 치료 과정에 복용한 약 때문이었을까, 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기억을 버리려 노력했지만 은유도 사라진다. 그러다 잠재의식 속에 남은 책과 목소리를 통해서 다시 나타난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의 애틋함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늙은 나무가 잘려나가거나, 추억의 장소들이 문을 닫았을 때 슬퍼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면 했다. 내게 그런 슬픔은 ‘인간’의 표지처럼 느껴졌다. 나는 머릿속에 내가 가본 모든 장소를 언제까지나 담아둘 수 있었기에 그곳들을 그렇듯 소중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119쪽)

 윤이형은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린 삶을 통해 개인적 기억의 가치를 묻는다. 단 한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잊지 않으려고 계속 그의 이름을 되뇌고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그 사람의 자리를 비워두는 것일까? 망각의 바다를 유영하는 게 삶일지라도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려는 본능이 우리를 지켜주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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