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딜리아니 그림에는 왜 눈동자가 없을까
모딜리아니 그림에는 왜 눈동자가 없을까
  • 정지은 기자
  • 승인 2015.07.0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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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수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린 당대 최고의 미남 화가 모딜리아니.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대개 눈동자가 없다. 까맣고 파랗고 때론 초록의 색이 눈을 대신한다. 이 그림 속 여인의 눈은 회색으로 채워져 있다. 어째서일까.

'내마음 다독다독, 그림 한점(팜파스)'의 저자 이정아는 모딜리아니의 작품 ‘노란 스웨터를 입은 잔 에뷔테른’을 이렇게 묘사했다.

모딜리아니 - 노란 스웨터를 입은 잔 에뷔테른

"길고 가는 목과 처진 어깨, 비스듬히 기울어진 얼굴의 여인. 몸짓은 고양이처럼 우아하고 나른해 보이지만 눈빛은 상념에 잠긴듯 공허해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어딘가를 응시한다. 그 처연한 시선이 닿는 곳은 어디일까. 여인의 주위로 까닭 모를 슬픔과 애잔함이 맴돌고 있는 것 같다."

책에서는 그의 고단한 삶의 기록을 통해 작품세계를 들여다보았다.

"1917년 파리의 가난한 무명화가인 모딜리아니는 불확실하고 위태로운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싸구려 술에 빠져 있었고, 때론 약에 취해 거리를 배회했다. 자신의 그림은 빵 한덩어리와 술을 사기 위해 헐값에 팔아치웠다. 모딜리아니의 병적인 방황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생활은 가혹할 만큼 궁핍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인기가 없었고, 딸이 태어나면서 생활은 더욱 쪼들렸다. 게다가 아내 잔은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벽에 곰팡이가 잔뜩 낀 아틀리에는 낡은 침대와 캔버스, 굴러다니는 통조림 몇개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모딜리아니는 끊임없이 기침을 해댔다. 때론 피를 토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잔은 친정 부모에게 찾아가 구걸하다시피 도움을 요청했다.

그날 처음으로 모딜리아니가 자화상을 그렸다. 아끼던 갈색 코트를 꺼내 입더니 파란 스카프까지 둘렀다. 그러고는 벽난로 옆에 세워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더니 이내 빠른 손놀림으로 그림을 그려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잔이 불룩한 배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뱃속의 아기가 신호를 보내듯 힘찬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이 이제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짐작하고 있었다. 모딜리아니는 뭔가에 쪽기는 사람처럼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고열로 정신이 희미해져갔지만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림이 완성됐다. 모딜리아니는 자화상에 서명을 하고 잔 옆에 몸을 뉘였다. 잔은 그런 모딜리아니를 아기처럼 품에 안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1920년 1월 24일 모딜리아니는 눈을 감았다. 사인은 결핵성 뇌막염이었다. 그의 장례식 날 아침 잔은 아파트 6층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한 달 후면 둘째가 태어날 예정이었다. 두 사람은 페르라세즈에 함께 묻혔다."

모딜리아니 -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

그림에서 잔의 눈빛은 텅 비어 있다.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은 오로지 텅빈 눈동자로만 그 끝모를 심연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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