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엔 많이 사랑하세요, 대신 어렵게 하세요"
"20대엔 많이 사랑하세요, 대신 어렵게 하세요"
  • 북데일리
  • 승인 2007.04.1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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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에세이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펴낸 시인 김선우

[북데일리]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를 통해 ‘도발적인 감수성’을 뿜어낸 시인 김선우(37). 그녀가 이번엔 말캉한 사랑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김선우의 신작 에세이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미루나무. 2007)은 눈물겹게 아름다운 사랑과 청춘에 바치는 비망록이다. 친구 혹은 연인에게 쓰여진 편지글 안에 다양한 질문이 녹아있다.

‘사랑은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무엇이 남을까’ ‘우리들의 젊음과 사랑은 누가 기억해줄까’

명쾌한 답이 제시되지는 않는다. 사랑에는 정답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시인은 그저 가만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고백 한 번 못하고 3년간을 끙끙 댄 첫사랑부터 현재 곁에 있는 ‘짝꿍’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걸어온 길을 함께 되짚어가며 독자는 위로받고, 또 다시 사랑할 용기를 얻는다.

“나의 진짜 연애가 첫사랑 이후에 시작된 것처럼, 당신을 만나기까지 많은 사랑을 지나왔어요. 서툴거나 많이 힘들었거나 배반당하거나 권태롭거나 아팠던 사랑들을 지나오면서 나는 이제 느낍니다. 사랑은 성장하는 거라는 걸.” (‘모든 사랑은 첫사랑’ 중에서)

“사랑은 ‘열라’ 어렵게 해야 돼요.”

시인 정호승의 표현을 빌자면, 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오솔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리고 이는 바로 저자가 품은 의도이기도 하다. 최근 홍대 근처 카페에서 만난 김선우는 “아직 내 나이가 되지 않은 여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며 “연애를 하면서 상처를 입지 않을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덜 아픈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출간의 변을 밝혔다.

“19살에 첫사랑을 시작했고, 20대는 굉장히 힘들게 건너왔어요.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것들, 그 과정을 조금씩이나마 알겠더라고요.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여유가 생겼고요.”

그녀가 ‘아득바득’ 연애를 이어온 선배로서 사랑에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은 하나다.

“인생 뭐 별거 있겠어요? 잘 될 때까지 사랑하는 일 밖에.”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수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말. 인생 전반에 적용되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진리다.

“어떤 이들은 하나의 인연을 붙들고 그것에서 완성을 보려고 하는데, 잘못됐다고 봐요. 내 앞에 던져지는 다양한 패를 모두 집어볼 필요가 있어요. 특히 20대에는 충분히 사랑하고 가능한 많이 연애했으면 좋겠어요.”

소설가 박완서는 묵상집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에서 “씹다 버린 껌보다 더 흔하고 천한 게 사랑”이라며 사랑을 가볍게 여기는 세태를 맹렬히 비난한 바 있다.

김선우 역시 소위 ‘인스턴트 사랑’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가볍게 만나고 가볍게 헤어지는 그 모든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물음표가 붙어요. 사랑이 인스턴트화 돼가는 건 우리 삶 속에서 문학의 향기를 잃어가는 것과 비슷한 징후죠.”

그녀는 “사랑은 ‘열라’ 어렵게 해야 한다”는 말로 ‘김선우식 사랑론’에 방점을 찍었다.

다양한 글쓰기, 시로 독자를 유입하기 위한 창구

사실 김선우가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을 펴낸 데는 숨은 의도가 하나 더 있다. 독자와 보다 친숙해지기 위해서다.

“이번이 세 번째 산문집이에요. 이전까지 작품이 ‘미학적으로 훌륭했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대중 소통력에 있어서는 뚜렷한 한계를 보였어요.”

문학에 있어 위기론이 대두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빠른 속도로 무너져가는 독자층에 갖가지 원인과 해결책이 난무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김선우 역시 위기의식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

“읽기 훈련이 충분히 돼있는, 그래서 어떤 글이든 소화해낼 수 있는 ‘고급독자’는 분명 필요해요.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문학이 지켜지지가 않죠. 연령, 성별, 직업에 걸쳐 실로 다양한 독자들이 있잖아요? 그들의 감성과 소통하려면, 문학도 그만큼 다양해져야 해요.”

사랑만큼 오랜 시간동안 인류에게 관심을 받아온 화두도 없을 터. 시인이 보다 많은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 이를 주제로 택한 이유다.

궁극적인 목표는 시(詩)로의 유입에 있다.

“시 독자를 넓히는 일은 힘들어요. 지금 존재하고 있는 독자들이 계속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성공이에요. 제가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제 산문집을 읽은 독자들을 제 시집으로 끌어들이는 거죠.”

김선우는 그간 시집 외에도 동화책, 산문집 등을 발표했다.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세설’, 시를 소개하는 ‘시가 있는 아침’ 등의 칼럼도 언론에 게재해왔다. 이처럼 다방면에 걸친 글쓰기는 결국 독자를 자신의 시로 안내하기 위한 장치였던 셈이다.

집필활동 저변에 깔린 ‘고도의 계산’이 밉지 않은 까닭, 시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애정이 밑바탕에 단단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말한다.

“저는 시인인 제가 굉장히 좋아요. 시인이나 소설가들은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아요. 문학이 살아있지 않으면 어느 사회든 천박해지기 마련이거든요.”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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