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하나가 시가 되는 순간
깃털 하나가 시가 되는 순간
  • 정지은 기자
  • 승인 2015.06.24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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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불과재>중에서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시인은 매의 눈을 가졌다. 주변 사물을 허투루 보지 않는다. 나뭇잎 하나를 보는 눈도 다르다. 아래 시는 신미균 시인의 시다. <불과재>(시인동네. 2015)에 실인 이 시와 해설을 보면 깃털을 따라 가는 시인의 호기심 가득찬 눈이 그려진다. 책은 장석주 시인의 문학평론집이다.

[포스트잇] ‘오리털 점퍼의 옆구리에서 깃털 하나 빠져나왔다. 촘촘한 박음질 사이를 빠져나오느라 온몸을 접고 구부리고 움츠렸을 텐데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깃털은 가볍게 공중에 떠 있다가 엄칫멈칫 서두르지 않고 아래로 내려앉고 있다. 바람을 거스르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선뜻 몸을 맡기지도 않는다. 혼자서 춤을 추듯 빙빙 돌기도 하고 스르르 미끄러지기도 하고 누가 잡으려 하든지 말든지 느긋하게 자기의 길을 가고 있다. 촘촘하게 바음질 된 하늘이 구름 속으로 흩어지고 뒤뚱거리며 따라온 길들이 사라진다. 깃털은 소리를 내지도 않고 남의 눈에 띄려고 하지도 않는다. 땅으로 다 내려와서는 땅을 한번 살짝 건드려보고는 다시 얼른 도망가기도 하면서 장난을 친다. 자유롭다’ -신미균, ‘깃털’

오리털 점퍼의 옆구리에서 빠져나온 깃털 하나! 깃털은 기껏해야 어떤 무리나 질서에서 이탈한 작은 존재다. ‘오리털 점퍼’가 깃털들이 모여 있는 세계라면, 거기서 빠져나온 깃털은 스스로 세계의 주변부로 떠돌기를 선택한 하나의 객, 방외인, 거친 바다를 떠도는 모비딕일 것이다.

공중에 가볍게 떠 있는 것, 바람을 거스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것에 선뜻 몸을 맡기지도 않으려고 하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탐색하며 “자기의 길”을 가는 것! 깃털은 공중에서 아래로 내려앉으며 춤을 추듯 “빙빙”돌고 “스르르” 미끄러지기도 하며, 땅을 “살짝” 건드려 보고 다시 “얼른” 도망가기도 하며 장난을 친다. 빙빙, 스르르, 살짝, 얼른 따위 동작을 아우르는 의태어나 부사어들이 암시하는 것은 자유의 현실태다.

‘깃털’은 신미균 시의 화자들이 취하려는 자유로움과 잘 어울린다. 신미균 시의 화자들이 꿈꾸고 동경하는 것은 깃털같이 가벼운 삶이고, 가벼운 삶은 곧 자유로운 삶이다. 135~136쪽

 

*문단은 임으로 나누었음-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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