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이오덕의 30년 우정 '약 꼭 드세요. 약값은 제가 갚아요'
권정생, 이오덕의 30년 우정 '약 꼭 드세요. 약값은 제가 갚아요'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6.04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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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배우는 청소년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양철북. 2015)는 권정생과 이오덕이 1973년부터 2002년까지 30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다.

 권정생에게 이오덕은 스승이자 피를 나눈 형제 그 이상이었다. 권정생을 만난 후 그의 문학을 많은 이가 읽을 수 있도록 신문사와 출판사와 연락을 취하고 출판과 인세를 비롯한 모든 일을 도맡는다. 혹시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약을 먹지 못할까 걱정하고 책에 대한 열정으로 건강을 해칠까 몹시 염려한다.

 ‘약을 계속해서 잡수셔야 할 터인데 걱정입니다. 어디 돈을 빌려서라도 약을 잡수시면 제가 가서 갚겠습니다. 그렇게 쇠약하신데도 책을 읽고 싶어 하시니,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반성됩니다. 일본서 절판되었다는 책은 선집이 저한테 있으니 다음 갈 때 가져가겠습니다. 독서도 너무 무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979년 11월 19일 이오덕의 편지 중에서, 198쪽)

 나보다 나를 더 생각해주는 이가 있다는 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나의 모든 걸 맡기고 의논하면 의지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삶이자 성공한 삶이다. 이오덕과 권정생의 편지를 읽다 보면 사랑받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다. 과중한 업무로 항상 바빠 찾아가지 못해 미안해하는 이오덕의 편지에 권정생의 답장은 마치 연인의 고백과도 같다. 한 번의 만남을 위해 약속을 정하고 변경된 일정을 알리는 일도 모두 편지로 가능했던 시절이기에 이오덕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권정생의 배려가 담겼다.

 ‘기다리지 않아도 올 것은 오고 마니까 사람들은 바보입니다. 하루도 기다리지 않고는 못 배기니까요. 선생님은 찾아오지 않아도 항상 제 곁에 계신답니다.’ (1974년 8월 23일 권정생의 편지 중에서, 76쪽)

 이오덕과 권정생은 새로운 원고가 나올 때마다 가자 먼저 보여줄 수 있는 존재였다. 기탄없이 서로의 글을 평할 수 있는 상대로 서로의 문학과 한국 아동문학에 대한 의견이 오가는 편지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가난과 전쟁, 그리고 스무 살에 결핵이 걸려 오랜 시간 외롭게 고통을 받으며 살아온 삶이 있었기에 『강아지똥』과 『몽실 언니』를 비롯한 보석 같은 동화가 존재할 수 있었다.

 모든 게 쉽게 뜨거워지고 사라지는 시대에 진실한 우정과 삶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귀한 책이다.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배우는 청소년이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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