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도 아이들은 성장한다. 스스로 자라기 위해 보다 많은 고통을 견뎌야 하기에 아프다. 박영란의 <나의 고독한 두리안나무>(자음과모음.2011)는 그런 성장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소설 속 주인공 열세 살 윤희는 필리핀으로 유학을 왔다. 미용실을 하던 엄마와 연락이 끊기고 생활비도 오지 않는다. 필리핀에서 고아 아닌 고아가 되었다. 열세 살은 아이 쪽으로 더 기우는 나이다. 사립학교에 다녔고 좋은 하숙집에서 머문다고 하지만 열세 살의 나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별들은 어쩐지 반짝일 기분이 나지 않는 날인 것 같고, 뾰족하기만 한 초승달은 빛을 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친구를 만나고 오는 길인데도 쓸쓸한 기분이 든다. 어두운 밤에 혼자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 까만 거미가 된 기분이다.’ (47쪽)
윤희에겐 낯선 나라에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다. 하지만 먼저 손을 내미는 진실한 친구는 없었다. 오히려 윤희는 어른들과 친구가 된다. 학교가 아닌 거리를 배회하던 윤희의 시선이 닿은 곳에 어른들이 있었다. 서울에서 온 데니슨 아줌마와 말이 통하지 않는 살라망고 아줌마는 윤희에게 친절하다. 윤희는 그들에게 슬픔을 발견한다. 이상하게도 불행해 보인다. 열세 살 답지 않게 어른스럽다. 그 과정을 아름다운 성장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시절을 거부할 수 없으므로 스스로를 단련시킬 수밖에 없다.
소설에서 언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 같은 언어로 일상을 이야기한다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작가는 무척 섬세하게 열세 살의 심리를 그려낸다. 책 곳곳에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애절하게 표현한다.
‘망고나무 잎사귀들이 바람에 쓸려 싸, 싸, 싸,
소리를 내면서 흔들리는 모습을 엄마도 한번 봐야 할 텐데! 허리에 붉은 상처가 깊게 파인 망고나무들이 얼마나 멋지게 버티고 서서 바람을 날려보내는지 엄마도 한번 봐야 할 텐데!
싸, 싸, 싸. 싸, 싸, 싸아.
망고나무 잎사귀들이 일제히 바람에 몰려나가는 소리를 엄마도 한번 들어봐야 할 텐데!’ (17~18쪽)
두려움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망고나무숲으로 향하는 윤희.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까. 언젠가 지금 이 시절을 돌아 볼 때 두리안나무숲에서 보낸 시간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 시리면서도 아름다운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귀를 기울이면 싸. 싸. 싸. 싸아, 하는 숲의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