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왕을 '너'라 불렀다가...
술에 취해 왕을 '너'라 불렀다가...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05.0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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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독립>중에서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즐겨 마신다. 가볍게 한두 잔 정도는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고 긴장감 있는 모임에 어색함을 해결하기도 한다.

<남자의 독립>(프롬북스.2015)에 따르면, 실제 조선시대에는 술이 약이고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술을 숭상한다는 뜻으로 숭음(崇飮)이라 부르기도 했다. 특히 조선시대 왕들 가운데 손에 꼽히는 주폭들이 있다고 한다. 과연 어떤 왕일까. 다음은 책이 전하는 이야기다.

최고로 손에 꼽히는 주폭(酒暴)은 바로 영조(英祖, 1694~1776)다. 그는 조선 21대 왕으로 조선왕조의 역대 임금 가운데 재위기간이 가장 긴 왕이기도 하다. 그는 미천한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나 왕위에 오르기까지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고, 재위 기간 중에는 숱한 변란과 당쟁을 치러야 했다. 때문에 괴로움을 달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거의 매일 술을 마신 것이 아닐까 싶다. 술과 관련하여 영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영조의 폭음을 걱정한 검토관 조명겸이 이렇게 아뢰었다. “세간에 전해진 말을 옮기면 성상께서 술을 끊을 수 없다고들 합니다. 신은 그 허실을 알지 못하겠지만, 오직 바라옵건대 조심하시고 경계함을 보존토록 하십시오.” 그러자 영조는 이렇게 둘러댔다. “내가 목이 마를 때 간혹 오미자차를 마시는데, 남들이 소주인 줄 의심을 하는 것이니라.” (260쪽~261쪽)

이어 조선시대 두 번째 주폭으로 조선 제3대 왕인 태종(太宗, 1367~1422) 이방원을 소개했다. 그는 왕자의 난을 계기로 재기에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또 왕위에 오른 뒤에도 피의 숙청을 단행해야 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여가(何如歌)와 단심가(丹心歌)도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한 술 정치, 즉 술상 앞에서 탄생한 것이다.

세 번째 주폭으로 선정된 왕은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더 많이 알려진 조선왕조 7대 왕 세조(世祖, 1417~1468)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리는데 어린 조카인 단종(端宗)의 왕위를 찬탈하고 수많은 신하들을 죽인 ‘피의 군주’인 동시에 부친인 세종의 위업을 계승한 치적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는 세조와 함께 술을 마시던 정인지가 술에 취해 세조에게 ‘너’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는 불경죄로 귀양을 갔는데, 세조는 술에 취해 생긴 일이라고 관대히 넘어가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신하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귀양을 보냈다고 알려진다.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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