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서 정이 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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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4.2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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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말하자면 좋은 사람>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내가 사는 도시는 수십만 개의, 좁고 더 좁고 더더 좁은 골목들로 이루어진 곳이다. 그 골목을 혼자 걷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살짝 웅크린 어깨와 보풀이 일어난 카디건과 주머니 속에 정물처럼 가만히 들어 있는 한쪽 손에 대하여 쓰고 싶었다. 그들이 잠시 혼자였던 바로 그 순간에 대하여.’ (작가의 말 중에서)

 정이현의 <말하자면 좋은 사람>(마음산책.2014)은 아주 짧은 11개의 이야기 모음이다. 농담처럼 보이지만 진심인 우리네 일상을 담았다. 잊고 있었던 지난 시절의 부끄럽고 창피한 모습도 보였고 잊어서는 안 되는 어떤 장면을 상기킨다. 그것은 조금은 유쾌하고 조금은 우울한 일이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첫사랑이 남긴 선명한 입맞춤처럼 말이다.

 정이현은 제목처럼 ‘말하자면 좋은 사람’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한때 사랑했던 사람, 내가 상처를 준 사람, 어디에도 기댈 곳 없어 방황하던 시절, 이별과 실패로 어디라도 화를 내고 싶었던 시절을 견디는 게 당신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다니지만 결국 원하는 곳에는 취직을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방문교사로 취직한 「견디다」속 이십 대의 불안, 「아일랜드」의 주인공 열여덟 소녀는 십 대의 방황이라고 치부하기엔 복잡한 감정의 시간을 보낸다.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고 믿었던 시간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미 지나왔고 누군가는 지금 그 길에 놓여 있을 것이다.

 ‘겨울은 매년 아주 금방 돌아오는 것 같다. 겨울 해변에 갈 수 있을 때도 있고 그러지 못할 때도 있다. 열여덟 살의 제부도로부터 부정확한 속도로 멀어져간다. 뽀족한 모서리에 서 있는 느낌은 잊을 만하면 찾아든다. 그럴 땐 아직도 저 홀로 꺼졌다 켜졌다 하고 있을 다리 위의 가로등을 생각한다. 태양이 존재하는 동안 작동을 멈추지 않을.’ (「아일랜드」124~125쪽)

 산다는 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숙제다. 하지만 저마다 숙제를 푸는 방법과 답은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어떤 방법으로 숙제를 풀고 있는지 이야기하며 위로하고 격려한다. 하루 종일 택시 운전사 「별」 의 주인공이 직업병으로 얻은 종기에 대해 사람들의 조언이 그렇다.

 ‘그때는 너무 힘들었지. 그런데 지나고 나니까 괜찮아. 종기가 터지고 나면 그때부터 멀쩡해진다니까. 몰랐단 말이야? 사는 게 원래 그렇잖아? 말들과 말들 사이에서 종기는 한 번 더 풀쩍 부풀었다.’ (「별」171쪽)

 하지만 사는 게 원래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연륜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래서 「비밀의 화원」의 아내는 가상의 공간에서 다른 나를 만든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곁에 두고 새로운 나를 돌본다. 현재 자신의 삶과는 교집합을 찾을 수 없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남편 역시 그 마음을 알기에 아내를 질책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안다. 집으로 들어오기 전 골목을 서성이는 누군가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아픔을 포장마차에서 한 잔 술에 털어버리는 사람을 말이다. 그들이 이 책에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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