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의 재발견? "현대문명 교과서"
박노해의 재발견? "현대문명 교과서"
  • 임정섭 대표
  • 승인 2015.03.1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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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스님의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북데일리]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은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을 기억한다. ‘공장’이라는 이질적인 세계와 ‘노동’이라는 삶의 가치는 충격이었다.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시어는 시는 아름답다는 등식을 부쉈다.

이후 박노해는 생명과 평화, 나눔을 실천하며 현실 정치나 사회와는 비켜나 있는 모습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그의 시집은 빨간 색이었지만 피처럼 선연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와 관련 최근 법인 스님이 쓴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불광출판사. 2015)에 박노해 시인의 시와 평이 실렸다. 법인은 "박노해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단숨에 읽었다"며 그의 시를 두고 “현대문명의 교과서”이며 “오늘의 <법구경>”이라고 극찬했다. 그 시집에 실린 시 한 편이다.

그가 밥을 구하러 가네 / 빈 그릇 하나 들고 / 한 집 / 두 집 / 세 집 / 밥을 얻으러 가네

일곱 집을 돌아도 / 밥그릇이 절반도 차지 않을 때 / 그 사람 / 여덟 번째 집에 가지 않고 / 발걸음을 돌리네

일곱집이나 돌았어도 / 음식이 부족하다면 / 그만큼 인민들이 먹고살기 어렵기에 / 그 사람 / 더 이상 밥을 비는 일을 멈추고 / 나무 아래 호로 앉아 반 그릇 밥을 꼭꼭 / 눈물로 씹으며 인민의 배고픔을 느끼네 -‘구도자의 밥’ 전문

법인은 이 시에 대해 받은 충격을 다음처럼 말한다.

“내 인식의 오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붓다와 그 제자들의 탁발은, 걸식을 통해 무소유 정신을 구현하고 적은 소유로 자족하며 겸손과 하심의 마음을 간직하고 인욕의 힘을 기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에서 밥 한 그릇은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민초의 배고픔과 핍박, 나아가 그들의 눈물과 염원까지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문명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21세기 지구촌의 온갖 모순과 억압, 분쟁과 불평등의 절규에서, 가득 채워지지 않은 붓다의 밥 그릇 속에 서린 눈물을 본 것이다.”

눈물 밥을 먹으며 대중의 아픔을 공유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법인을 통해 박노해를 재발견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은 검색만 있고 사유가 없는 온라인 시대의 행태를 비판한 문장이다. 이 책에 걸 맞는 제목이다. 책 내용 역시 ‘검색’으로 상징되는 고정된 생각에서 벗어나, 깨어있는 ‘사유의 회복’을 권하는 주제에 딱 맞게 알차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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