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책읽는 '세가지 즐거움'
장석주의 책읽는 '세가지 즐거움'
  • 김영욱 기자
  • 승인 2015.03.06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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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북데일리] 제대로 된 독서광과 만나는 기쁨은 적어도 세 가지에서 온다. 하나는 당사자의 생각 깊은 문장을 읽는 일, 다른 하나는 좋은 책을 추천받는 일, 마지막으로 책이 함께 하는 삶의 즐거움에 대한 동경이다.

시인이자 독서광 장석주의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현암사. 2015)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로 장이 이뤄졌다. 계절을 살아가는 삶과 단상이 자연스럽게 책읽기와 연결된다. 봄에 비해 겨울 쪽이 무겁다. 여름에 비해 가을 쪽이 더 사색적이다. 예컨대 겨울은 철학으로 시작한다.

진중한 독서는 어둠과 혹한과 긴 밤의 선물이다. 살아남음이라는 대의 앞에서 모든 것들은 사소해진다. 모든 영장류들은 겨울에 혹한을 견디며 살아남기 위해 집중한다.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 본능 속엔 아직도 이 습관이 살아 있다. -362쪽

시인 김경주는 <패스포트>에서 인적이 없는 겨울에 바이칼은 모든 것을 얼려버리고 동면에 들어가지만 나무와 숲, 호수, 바람, 산양은 언 채로 살아가고 언 채로 자신의 고혹을 감당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겨울은 삶을 위한 인내이고 봄을 위한 기다림이다. 따라서 겨울은 준엄하고 한편으로 설렌다.

겨울 편에서 저자는 <철학자의 늑대>를 소개하며 늑대를 통해서 새롭게 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통찰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번째 관한 내용이다. 다음과 같은 인용 글을 읽다 보면, 그것이 들어있는 원본을 읽고 싶어진다.

피아노 연주가 어려운 것은 ‘건반과 관객의 영혼이 동시에 누름으로써 소리를 만들어내는’(러셀 셔먼의 <피아노 이야기>) 것이기 때문이다.-58쪽

‘우표는 큰 나라들이 아이 방에 넣어두는 명함이다.’(발터 벤아민의 <일방통행로>) 나는 이 문장 앞에서 불현듯 우표 수집에 열광했던 소년 시절을 향한 아득한 향수에 잠겨 당장에 그 시절로 달려간다. 나는 지구 어디엔가 붙여 있을 저 먼 나라들의 우표들을 보면서 얼마나 낯선 이국에서의 삶을 꿈꾸었던가. -17쪽

‘일요일은 기항지며 피난처다.’(피레르 쌍소외 ‘게으름의 즐거움’) 일요일의 고요, 일요일의 평화는 곧 주중의 일상을 지배하는 시간의 가속화를 늦추고 얻은 축복이다. -232쪽

마지막으로 장석주라는 독서광이 사는 삶은 책을 좋아하는 애서가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한가롭게 햇볕을 쬐며 책을 읽게 것이 행복하다. 무릎을 담요로 덮고 그 위에 책을 올려놓고 햇볕을 쬐며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오후...”

그는 “왜 책인가?”라고 묻고 움베르토 에코의 “책은 생명보험이며, 불사를 위한 약간의 선금이다.”는 말을 인용한다. 이 말은 여러모로 맞다. 다수의 삶을 살 수 있어 다 합치면 수명이 천년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보험은 잃은 것에 대한 반대급부이자 상처에 대한 위로이다. 우리는 살다가 어떤 위기에 닥쳐 상처를 입거나 상실감에 좌절 할 때 우리를 위로해주고 구원해 줄 '이'는 책이다. 아래 문장처럼 늘 새롭게 태어나니 불사 아닌가.

“나는 책에서 울려 나오는 메아리에 매혹된 자, 그 중단을 모르는 기쁨의 발아(發芽)에 중독된 사람이다. 내 자아는 책 속에서 날마다 새롭게 발아한다.“ (본문 중)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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