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말하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말하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11.10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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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기창의 <모나코>

 [북데일리] 생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온전히 나만을 위해 살기를 원할 것이다. 주위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지막을 위한 현명한 이별 방식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임에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건강상의 이유로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말이다. 그러니 자유롭게 살아가는 김기창 장편소설 <모나코>(2014. 민음사)속 노인은 모두에게 부러운 사람이다.

 노인은 거대한 저택에 고양이 두 마리와 출퇴근 도우미 ‘덕’과 살고 있다. 노인은 이웃과 교류가 있거나 동네 노인정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다. 집 안에는 그를 위한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다. 건강을 위해 꾸준하게 운동을 하고 집안 곳곳에 다양한 약은 물론 영화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까지 따로 있다. 노후의 걱정이나 근심을 찾아볼 수 없는 삶이다. 때때로 세 아들의 형식적인 방문이 기다려질 때도 있고 죽은 아내가 그립지만 혼자인 게 좋다.

 노인의 즐거움은 동네 산책이며 ‘진’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진’은 유부남의 아이를 낳고 수녀원에서 생활하는 여자다. 젊고 어린 ‘진’을 보면 설레고 흥분된다. 젊음을 느낄 수 있는 것, 욕망을 상상하는 것, 그것으로 족하다.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다. ‘진’도 다르지 않다. 노인에게 돈을 목적으로 접근한 게 아니다. 말이 통하는 친구, 자신과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노인이 나쁘지 않을 뿐이다.

 ‘노인은 자신과 진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을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결국, 그들은 아무도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지금껏 혼자인 것은 다른 사람들 탓이 아니다. 지금의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젊은 사람 중 관계의 시달림보다는 외로움을 택하는 사람이 있듯이 노인도 그럴 수 있다.’ (65쪽)

 고백하자면 소설을 읽는 내내 노인과 ‘진’ 사이에 무슨 일인가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진부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진을 초대해 맛있는 밥을 먹이고 따뜻한 물에 아이를 목욕시키는 일이 전부였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나코로 떠나 둘만의 시간을 갖거나 노인이 자신의 재산을 진에게 남기는 일 따위는 없었다.

 고양이와 말을 나룰 정도로 외로웠지만 노인은 죽음을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에게 남겨진 삶이 길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음식과 약이 있어도 곧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걸 누구보다 먼저 알았던 것이다. 죽음 앞에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노인도 그랬을 것이다. 다만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

 “내일 아침에 내가 살아 있으면 그때 가서 고민해도 안 늦어. 그리고 또 하루가 갈 거야. 나는 그다음 날 또 살아 있을지도 모르지. 그다음 날도. 또 그그다음 날도. 그그그다음 날도.” (111쪽)

 거칠 것 없는 노인의 당당함 뒤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은 혼자 겪어야 한다. 작가는 아무도 없는 커다란 집에서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노인의 모습은 통해 그 사실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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