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韓거창’에서 즐기는 명품여행
‘거창韓거창’에서 즐기는 명품여행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4.11.03 0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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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치 있는 숲길 걷고 고택에서 하룻밤을...

[북데일리] "영 너머 푸른 하늘 우러러 보니 / 두둥실 흰 구름 속 떠오르는 님의 모습 / 치맛자락 펄럭이며 고개 넘고 물 건너 / 오솔길 휘돌아 발자국 소리 사푼 사푼 / 봄을 이고 오시는가 / 요수정 새 아침이 서리꽃 배웅하니 / 서기 어린 햇살이 대지 위로 나루시어 / 오는 님을 마중하네 // 호음산 새소리가 잔설을 녹이고 / 덕유산 산수유가 봄소식 전해 오니 / 허리 굽은 노송들 쌍지팡이 짚고 서서 / 흥겨운 가락으로 / 척수대 등을 밀어 만년 잠을 깨우네 / 거북바위 눈동자에 스며 젖은 그리움 / 아득한 세월 / 누구를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는가 (중략)" - 신보성 시인의 시, '수승대' 중에서

지난 28일과 29일 거창군은 ‘언론. 방송 관계자 초청 거창한 체험여행’인 팸투어를 개최했다. 서울에서 3시간 30분 걸려 도착한 거창에서 처음 방문한 곳은 위천면 황산리에 위치한 ‘수승대(搜勝臺)’다. 이곳은 거창에서도 손꼽히는 명승지로, 방자가 이도령에게 추천한 전국 절경 중 하나로 전해진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과 다양한 바위가 어우러진 경치가 아주 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2013년에 방영된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배웅하던 곳이다. 애초에는 국세가 쇠약해진 백제의 사신이 돌아오지 못할 것을 슬퍼하며 송별하였다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했다.

이 후 조선 중종 때 ‘요수 신권(樂水 慎權)’ 선생이 이곳에 거하면서 ‘구연서원’을 건립하고 제자들을 키웠다. 수승대란 이름은 퇴계 이황 선생이 지은 이름이다. 1543년 이황 선생은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수송대에 대한 내력을 듣고 “풍경은 빼어난데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신권 선생에게 수승대라 고칠 것을 권하는 시를 지어 보냈던 것.

 

                                                    <암구대가 전면에 보이는 수승대의 일부>

구연서원의 정문 격인 ‘관수루’는 1740년(영조 16년)에 걸립되었다. 이 누각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계자난간 팔작지붕’으로 지어졌다. 커다란 거북이 형상을 한 바위 위에 틀어지고 굽은 형태의 기둥을 그대로 사용해 지은 것이 특징이다.

“관수루는 거의 300여 년 전에 지어진 건물인데 약간 기울어졌던 적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어요. 어떻게 300년 동안 안 무너질 거라고 자신했을까요? 그건 바로 건축가의 자존심이기도 하고요, 거창의 뚝심이기도 합니다. 거창 사람들이 기가 아주 세요.”

이날 팸 투어에 동행했던 표선자 해설사의 말이다. 설명을 들으니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면서도 자존심 또한 강한 선비 정신을 보는 듯 했다. 수승대 주변으로는 잎이 모두 떨어진 감나무 가지에는 홍시들이 주렁 주렁 매달려 있고, 단풍으로 노랗고 붉게 물든 산은 매혹적인 색채를 보여줬다.

 

                                                          <관수루에 대해 설명하는 표선자 해설사 >

그 외 여러 문인들이 바위에 글을 새겨 놓은 거북 모양의 바위인 ‘암구대’, 신권 선생의 호 요수를 따서 지은 ‘요수정’도 인상적이다. 특히 요수정은 신권 선생이 제자들과 풍류를 즐기며 학문을 나누었던 곳으로, 산과 접한 한쪽 면에만 아주 낮은 담장이 세워져 있다. 해설사에 따르면, 이것은 빗물이 고여 건물이 썩는 것을 막아주고 아래쪽에 있는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울창한 솔숲에 위치한 요수정을 물안개 낀 새벽에 본다면 마치 무릉도원인 줄 착각 할 수도 있겠다. 요수정은 유형문화재 제 423호이다.

 

                                                                  <요수정 측면>

이와 함께 농산리에 있는 ‘석조여래입상’, 단일암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크다는 금원산(金猿山) 지재미골 입구에 위치한 ‘문바위(門岩)’, 문바위를 지나 위쪽 골짜기에 있는 큰 바위굴 속에 새겨져 있는 ‘마애삼존불상(磨崖三尊佛像)’도 놓치기 아까운 보물이다.

 

                                                           < 가섭암지 마애삼존불, 보물 제530호>

이후 이름처럼 달빛과 별빛이 고운 ‘월성마을’에서 체험한 더덕 캐기와 가마솥에 밥 짓기도 이번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특히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었다는 ‘황산마을’ 한옥에서의 하룻밤은 무척 낭만적이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돌담 안에 자리한 한옥은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이었다. 숙박업소로 운영되고 있는 한옥은 종갓집 맏며느리처럼 정갈해 보이는 여주인만큼이나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서울과 달리 다음날 새벽 서리가 내릴 정도로 한기가 돌았던 한밤, 따끈하게 데워진 온돌방에서 깊고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한 겨울 소복이 눈 덮인 한옥마을 경치가 그려지며 겨울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둘째 날 아침, 전국 제일의 강알칼리 온천수가 나온다는 ‘가조온천’의 야외 온천탕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온천욕을 즐겼다. 마치 외국의 휴양지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후 어머니의 손맛이 듬뿍 담긴 된장찌개를 곁들인 아침 식사도 일품이었다. 대부분의 일행이 밥을 두 공기씩 비울 정도였다.

이와 함께 장인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유기공방 ‘놋이’도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방짜쇠(놋쇠)로 만드는 유기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왕족과 귀족 등 상류층에서 주로 사용됐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조선 시대부터 소개되기 시작했다. 유기는 “경박하게 고급스러움을 과시하는 황금빛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품격 있는 은은한 빛깔과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온화한 선”을 지닌 절제된 우아함을 가졌다. 놋이는 징소리에 평생을 건 ‘최고의 징장’ 이용구 선생(경남 무형문화재 제14호)으로부터 시작돼 그의 아들, 전수자 이경동씨가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구리와 주석을 78:22의 비율로 합금한 뒤, 두드려 늘이는 방짜기술을 통해 그릇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품 그릇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경동 전수자가 유기로 만든 징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그 외 '월성 우주창의과학관'에서는 태양망원경을 통해 태양을 관측하고 4D 영상관에서는 입체 영상도 관람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우주와 미래에 대한 꿈을 심어줄 수 있는 공간이다. 이즈음에는 사과 따기, 더덕 캐기, 승마체험 등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특히 거창의 대표 과일 중 하나인 사과는 일교차가 커서 당도가 높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뛰어나서 한번 맛보면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깊어가는 가을, 명품도시 거창에서 좋은 공기와 힘찬 기운을 듬뿍 안고 돌아왔다.  <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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