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의 주역은 스님?
한글 창제의 주역은 스님?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10.20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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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의 <천강에 비친 달>

 [북데일리] ‘세종은 신미에게 자음은 혀의 모양과 입술의 모양과 이 모양으로, 모음은 천지인(天地人)을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보라고 상형(象形)의 바탕을 일렀던 것이다. 이를테면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소리는 그때의 혀 모양을 본떠 ‘ㄱ’으로, 혀가 윗니 잇몸에 닿아서 나는 소리는 그때의 혀 모양을 본떠 ‘ㄴ’으로, 입에서 나는 소리는 입 모양을 본떠 ‘ㅁ’으로, 이에서 나는 소리는 이 모양을 본떠 ‘ㅅ’으로,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는 목구멍 모양을 본떠 ‘ㅇ’으로 만들라고 했으며 모음 글자 모양은 삼재 중에 하늘은 둥그니까 ‘·’ 이고 땅은 평평하니까 ‘_’이고, 사람은 서 있으니까 ‘ㅣ’로 해보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218쪽)

 세종대왕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알고 있는 한글은 세계가 인증한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글자다. 만약, 한글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어떤 글자로 이 글을 쓰고 있을까? 상상하기 조차 싫다. 그럼에도 한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없었다. 세종대왕, 집현전, 훈민정음 정도로만 기억할 뿐이다. 정찬주의 소설 <천강에 비친 달>을 통해 다시금 한글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의 시작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다. 그러나 진짜 한글을 만든 주역은 따로 있었다. 당시 조선의 숭유억불(崇儒抑佛)을 정책 때문에 지워져야만 했던 이름, 바로 신미 대사였다. 일부 사찰의 문란한 행태로 인해 세종은 드러내놓고 불심을 표현하지 못했다. 소설은 1420년부터 1450년까지 30년에 이어 한글을 만든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신미와 세종의 만남부터, 우리 글자의 필요성과 창제 과정과 반포 과정에 따른 반대 세력의 모함까지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전하, 모든 백성이 『대장경』이나 유가의 경전을 볼 수 있도록 한자가 아닌 우리 글자를 만드시옵소서.”

 신미의 제안에 세종은 잠시 침묵했다. 신미는 숨을 죽이며 세종의 기색을 살폈다. 세종의 입가에는 잠깐 미소가 어렸다.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찬성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여러 의견들을 들어가면서 심사숙고한 뒤 결정하겠다는 신중함이 묻어 있는 얼굴이었다. (80쪽)

 세종은 신미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신미가 한글을 만드는 일을 비공개로 진행해야 했다. 세자, 수양, 안평, 정의공주의 힘을 빌렸고 사헌부 대신들이 보안을 지켰다. 내 나라 글자를 만드는 일이 이처럼 위험한 일이었다. 곳곳에 신미를 노리는 자객이 있었다. 훈민정음을 세상에 알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유학을 고집하는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설은 픽션이지만 「세종실록」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을 함께 들려준다.

 난무하는 은어, 비어, 속어로 한글이 파괴되는 요즘 한글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소설이다. 백성의 무지에서 깨어나길 바랐던 세종의 마음을 생각한다. 한글의 고유성과 우수성은 말할 것도 없이 말이다. 한글의 소중함과 더불어 역사를 함께 배울 수 있으니 청소년에게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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