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 '개미'들의 변호사
주식시장 '개미'들의 변호사
  • 오명호 시민기자
  • 승인 2014.10.13 11: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약자에 대한 사랑, 세상 이해하기

[북데일리] ‘개미’란 주식시장에서 힘없고 돈 없는, 개인투자자를 낮춰 부르는 용어다. 주식시장에서 개미는 절대적 약자다. 개인투자자가 주식에서 성공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백이면 백 실패한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돈을 날렸다고 해서 구제 받지는 못한다. 주식투자는 자신의 책임하에 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모르진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누군가의 조작이나 불법 때문에 피해를 봤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상대의 반칙으로 경기에서 졌다면 그만큼 억울한 일도 없다. 그럼에도 주식시장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별로 없다.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2005년부터 ‘집단소송(class action)’ 이란 것이 마련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거대 기업과 싸워야 하는 일이다. 주식에서 성공하기보다 결코 쉽진 않다.

이런 현실에서 ‘개미들의 변호사’로 발벗고 나선 사람이 있다. 억울한 개인투자자를 대변해 거대기업과 ‘맞짱’을 뜨는 일을 하는 사람.

신간 <개미들의 변호사, 배짱기업과 맞장뜨다>(2014.문학동네)는 저자 김주영 변호사의 소송 활동 보고서다. 하지만 단순히 한 변호사의 일기로 보긴 힘들다.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꽤나 묵직하기 때문이다. 책은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저자의 활동 과정을 통해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심각하며, 또 그것이 어떻게 약자들을 괴롭히는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저자의 행보는 우연히 맡은 장애인복지단체 사건이 계기가 됐다. 특수학교 건립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에 맞서 공사재개를 이뤄냈다. 재판의 위력, 변호사가 가진 힘에 대해 새삼 눈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가진 재능, ‘세상을 바꾸는 소송’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하지만 그 이유가 약자를 사랑하는 ‘이타심’은 아니었다.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픈 저자의 야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솔직함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저자는 자신을 ‘호루라기 부는 변호사’ 라고 말한다. 영어로 ‘휘슬블로어(Whisle-blower)가 정부 또는 기업의 내부고발자를 의미하는 데서 착안한 명칭이다.

“나는 비록 내부자는 아니었지만 주로 대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의 행동을 모니터해서 문제점이 드러나면 이를 심층분석하여 공개하고 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했으므로 호루라기 부는 변호사라고 할 수 있겠다. 본래 호기심과 탐구심이 강한데다가 대형로펌에서의 기업변호사 활동경험에 참여연대 활동경험을 접목했으므로 나는 많은 기업들을 괴롭히는, 꽤 성가신 휘슬블로어 역할을 했다.” 89쪽

책에는 저자가 지난 10여 년간 수행했던 10건의 소송 기록을 담고 있다. 대우전자 소액주주운동과 분식회계소송, 바이코리아펀드 소송, LG그룹 주주대표소송, 현대전자 주가조작소송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사건들이다. 당시 신문이나 TV 등 매스컴의 일면을 장식했던 사건의 중심에 바로 저자 김주영 변호사가 있었던 것이다.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며 출시된 ‘바이코리아펀드’. 1999년 현대그룹에 의해 판매된 펀드로 한때 설정액이 12조 원에 이르렀다. 저자는 그간의 경륜으로 돈이 한꺼번에 몰리면 무슨 문제가 날 것 같다는 문제제기를 직감적으로 하게 되었고, 그 검증과 모니터링을 위해 자신도 펀드에 가입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사결과 저자의 예감은 적중했다. 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펀드의 장부열람 결과 운용사는 1,500억원에 달하는 불량유가증권을 고객재산에 편입하였고, 그로 인해 300억원의 고객 재산에 손실을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바이코리아 불법운용 사실은 예상대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가입한 많은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저자는 이를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면서 소송에 돌입했다.

거대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이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역시 녹록지 않은 싸움이었다. 피고측은 불법 운용(부실자산 상각을 위한 배드펀드 설정)이 사실상 금융감독당국의 허가 아래 이루어진 것이고, 부실자산의 발생원인이 당시의 실무관행에 따라 투신사가 떠안게 된 것이기 때문에 여러 펀드에 나누어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그리고는 피고측 변호사로부터 자발적인 배상을 하는 방향으로 해결하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소송 1년 4개월 만에 청구금액의 90%를 자발적으로 배상하는 것으로 소송을 종결시켰다.

“만약 집단소송제(2005년부터 도입)가 있었다면 수만 명에 달하는 불특정다수의 투자자들이 입은 290억 원 상당의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중략) 바이코리아펀드에 대한 장부열람과 손해배상소송을 계기로 투신업계에서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지던 펀드의 불법 운용이나 부당 편출입은 많이 줄었다고 하니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는 소송이라고 생각한다.” 110쪽

책을 보는 내내 2013년 방영했던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가 생각났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착한 변호사’.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 역시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희망을 전해준다. 편법과 불법이 없는 사회, 사회적 약자들이 피해보지 않는 시장, 공정하고 깨끗한 경쟁이 자리매김하는 그 날이 머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세상을 보다 밝은 곳으로 이끌고 있는 저자에게 찬사를 보내게 된다.

저자 김주영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 미국 시카고 대학원 법학 석사를 마치고 국내 최고의 로펌 ‘김앤장’을 거친 엘리트 변호사다. 현재는 법무법인 한누리의 대표변호사로 ‘개미투자자들을 위한 집단소송의 1인자’로 불리고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