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물 스미듯, 와닿는 성찰의 시
먹물 스미듯, 와닿는 성찰의 시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10.09 2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일효 시집<화선지>

 "혀가 물구나무 서고/ 입속에 호수 물처럼 침이 고이는 저녁/ 산해진미/ 오곡백과가 놓여도/ 소태씹은 듯 쓰기만 하다/ 받아주지 않는다/ 입이 자꾸/ 거부반응을 일으킨다."(고희古稀)전문
 
 [북데일리] 정년퇴임 후 시 창작에 몰두한 정일효 시인의 첫 번째 <화선지> (문학의 전당.2014)시집이다. 정갈하게 차려진 그의 시는 화선지에 먹물 스미듯 수월하게 읽힌다. 진솔한 삶에 대한 시심詩心은 독자와의 격의 없는 대화의 자리를 마련한다.
 
 눈금이 총총 박힌/ 계량기를 보면/ 꼭, 인생 축소판이란 생각이 들어/ 처세가 조심스러워진다/ 무게 있게 행동하고/ 조신하게 살아야지/ 허투루 살지 말고 부지런히/ 값진 삶을 살아야지/ 계량기의 중심축처럼/ 언제 어디서나 중심 잡고/ 사람답게 살아야지."(계량기)전문
 
 계량기를 바라보며 인생을 짚어내는 시인의 마음은 아포리즘을 바탕으로 한다. 오랜 경륜에서 길어 올린 자의식은 공감대의 폭이 넓다. 사물에서 솔직한 내면을 드러내는 부분은 수긍을 이끌어 낸다.
 
 "삶의 텃밭에는/ 폭풍우도 일고 쓰나미도 덮치고/ 허리케인도 몰아 친다/ 때로는 온화한 미풍이 손짓하기도 한다/ 나의 보물은 삶이 열정이다/ 어느 누가 갖다 줄 수도 없고/ 불러 일으킬 수 없는 나만의 보물이다/ 내 속에 꼭꼭 숨어 있는 열정을 쉬지않고 길러내고 자아내는 것이 보물찾기다."(숨겨진 보물찾기)부분
 
 이 시는 "너는 왜 사느냐"에 따른 대답처럼 들린다. 시인의 학창시절 선생님이 "났으니 존재할 따름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칠순 고비에 들어선 노 시인은 삶을 새로운 의미와 무게로 양파껍질을 벗기듯 살아갈 참뜻에 열정을 보인다.
 
 그래서일까. 시는 쉽게 스민다. 자기 성찰과 세상에 대한 따듯함이 시편마다 고스란하다. "동양의 지혜로는 '오동잎 한 잎 지는 소리가 천하의 가을을 알린다'  하고 서양의 지혜로는 '제비 한 마리가 여름을 만들지는 않는다(다름)'를 인정하는 일은 비단 시인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시인은 삶도 백짓장 같은 화선지를 펼쳐든 것과 같아 '어떻게 살것인가' 가 항상 문제란다.  삶, 결코 화선지에 먹물 번지듯 쉽지 않지만 이 시편들은 삶을 살아가는데 위로가 되어주지 않을까. <장맹순 시민기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