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자연, 은밀한 숲
황홀한 자연, 은밀한 숲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10.06 2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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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본능 따르는 사람들

[북데일리]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숲이나 산을 곁에 둔 사람은 행운아다. 그런 의미에서 바버라 킹솔버의 <본능의 계절>(비채. 2014)속 주인공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표지의 이미지처럼 거대한 자연의 기운을 그걸 알아차리는 놀라운 감각의 소유자다.

 소설은 <포식자들>, <나방의 사랑>,<옛날 밤나무>로 나눠 각각의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준다. <포식자>들의 주인공 디아나는 40대 여성으로 산림감시원으로 깊은 산속 통나무집에서 산다. 처음부터 혼자 산속에 들어온 건 아니다. 이혼 후 생태계의 변화를 관찰하고 사냥꾼으로부터 야생동물을 보호한다.

그런 디아나 앞에 에디 본도 란 젊은 청년이 나타난다. 에디 본도는 본능적으로 디아나에게 끌리지만 디아나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번식을 위해 고유한 향을 뿜어내는 꽃들, 아침저녁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숲을 지배하는 동물들. 그들과 하나가 되어 살려면 분명 대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디아나에게 에디 본도는 야생 코요테를 잡으려는 남자에 불과하다.

 <나방의 사랑>의 주인공 루사는 20대 나방을 사랑하는 곤충학자로 남편 콜을 따라 모든 걸 접고 시골로 내려온다. 시누이들의 간섭과 그들과 적지 않은 불화를 견디며 지낸다. 그러다 갑자기 남편 콜이 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은 루사는 농장을 혼자 꾸려야 한다.

시댁 식구들은 루사가 곧 도시로 떠날 거라 예상한다. 그러나 루사는 빚만 남은 농장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어떻게 하면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한 루사는 염소를 키우기로 한다. 염소를 구하고 기르는 과정에 대해 도움을 줄 사람을 청한다. 그가 바로 <옛날 밤나무>에 등장하는 노인 가넷이다. <옛날 밤나무>는 살충제로부터 과수원을 지키려는 70대 여인 내니와 이웃 가넷의 다툼기라 할 수 있다. 가넷에겐 자신의 밤나무를 지키기 위한 농약이 필요했고 내니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디아나, 루사, 대니는 모두 자연의 본능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디아나는 에디 본도를 피하려 하지만 결국엔 몸이 이끄는 대로 그와 사랑을 나눈다. 에디 본도와 함께 숲을 산책하며 생명체들의 먹이사슬을 보여주고 코요테 사냥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루사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농장의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농장 곳곳에서 콜의 추억을 발견하고 그리워한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고리가 되었다. 디아나와 대니는 한때 모녀처럼 지냈고, 루사와 가넷은 염소가 아닌 사이가 멀어진 사돈이었다. 생태계가 그렇듯 말이다.

 ‘여름이 끝나가는 이때, 저 뽕나무가 사방 몇 킬로미터 안의 생명체를 죄다 루사의 뜰로 끌어들이는 듯했다. 루사는 저 뽕나무가, 자신의 조상들이 고통과 시련의 세월을 견디며 양탄자와 태피스트리에 끈질기게 짜 넣었던 바로 그 나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새들이 모이는 나무. 나무에 대한 사람의 소유권이나 애착은 있다가도 없어진다. 하지만 새들은 변함없이 찾아든다.’ (620쪽)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과 산엔 얼마나 많은 식물이 살고 있을까? 작가는 소설 곳곳에 살아 숨 쉬는 황홀한 자연을 선물한다. 계절마다 은밀하고 미세하게 변화하는 숲을 보여준다. 숲 바닥에 퍼진 버섯 무리들, 아침마다 농장으로 파고드는 인동덩굴 향, 책을 읽는 동안 숲의 한가운데 서 있는 착각을 할 정도다. 그 안에서 질긴 생명력을 발견한다. 상처받은 세 명의 여인이 자연에 기대어 살아야 할 의지를 찾은 이유와 같다.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자연과 여성, 그 위대한 아름다움을 멋지게 풀어낸 소설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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