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할 틈 없는 공장 산책기
지루할 틈 없는 공장 산책기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10.0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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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

[북데일리] <추천> 공장 산책기라니,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한겨레출판)은 정말 신선한 책이다. 우리네 일상에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물건들을 만드는 곳이다. 종이를 만드는 제지 공장, 매일 먹는 음식을 만들 때 꼭 있어야 하는 간장 공장, 여성의 몸과 항상 함께 하는 브래지어 공장, 사랑을 나눌 때 필요한 콘돔 공장, 영화가 먼저 떠오르는 초콜릿 공장, 그곳에 가면 왠지 아름다워질 것 같은 화장품 공장, 지구를 만드는 지구본 공장 등 15개 공장이다.

 소설가답게 그가 맨 처음 소개한 공장은 제지 공장이다.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이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종이로 만든 신문을 읽고, 잡지를 구독하고 책을 읽는다. 아마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제지 공장이 무척 반가웠을 것이다. 나무에서 생산된 펄프로 종이를 만들고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은 다시 폐지가 되고 다시 재활용이 된다.

 ‘제지 공장 마당에는 엄청난 양이 재생 펄프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는데, 마치 잔잔한 파도를 보는 듯했다. 펄프는 겹겹이 쌓여 있었고, 까마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거긴 정말 바다 같았다. 종이로 가득 찬 바다, 나무로 만든 바다, 우리가 버린 바다, 누군가 되살린 바다.’(22쪽)

 콘돔과 브래지어 공장에서는 글에서도 부끄러움이 느껴졌지만 스스로 가방 중독자라 고백하며 가방 공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 그가 얼마나 가방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명품이 아닌 오롯이 나만을 위한 가방 말이다. 그의 말대로 결핍이 불러온 중독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방이 없었고, 내 책상이 없었다. 가방만이 유일한 내 것이었고, 내 가방엔 내 것을 넣을 수 있었다. 가방을 들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해지고, 안전한 곳에 있는 것 같고, 모든 게 준비돼 있는 것 같았다. 가방은 축소한 집 같다. 가방에 달린 주머니들은 각각 하나의 방이고, 그래서인지 나는 수납 공간이 많고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가방을 유독 좋아한다.’(82쪽)

 하나의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생경하고 재미있지만 그것에 담긴 김중혁의 시선과 사연을 들을 수 있어 더욱 좋다. 모든 게 귀했던 시절 초콜릿과 피아노는 부의 상징. 김중혁이 추억하듯 피아노는 특별했다. 나와는 다른 세계의 아이들만 만질 수 있는 악기였고,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애틋한 존재다. 누군가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징 소리가 날 것 같은 대장간 공장, 음악의 의미를 되새기는 엘피 공장, 냉장고의 맥주를 꺼내게 만드는 맥주 공장, 모두 다 유익하고 재미있다. 인상적인 공장은 지구본을 만드는 공장과 김중혁의 글 공장이다. 한국이 지구본을 얼마나 잘 만드는지 처음 알았다. 거기다 나라의 수도가 바뀔 때마다 수정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니.

 김중혁의 글 공장은 말 그대로 김중혁의 소설이 물건이 되는 것이다. 글감이라는 재료를 분류하고 숙성하여 소설, 수필, 그림 세 개의 생산 라인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한다. 좋은 글(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노트와 연필을 그림으로 보여주는데 문구를 좋아하는 이라면 정말 탐이 날 정도였다. 이 산책기가 특이한 점은 각각의 공장에 대한 특징을 그림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제품의 특징과 공장의 분위기를 포착한 그림은 사진 이상의 생생함을 전달한다.

 지루할 틈이 없는 공장 산책기다. 과거와 달리 공장이라는 이미지는 사람 대신 기계가 일하는 모습이 겹쳐진다. 하지만 공장에는 사람이 있었다. 기계를 작동하고 관리하는 건 사람이다. 똑같은 과정을 하루 종일 반복하고, 불량 제품을 찾아내고, 자신의 자리에서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니까 공장은 사람들을 위한 물건을 만드는 곳이며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신성하고 귀한 곳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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