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보며 '마음의 현'을 켜다
풍경을 보며 '마음의 현'을 켜다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9.30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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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풍경이라는 거짓말>

"나는 여행을 다녔다기보다는 예상할 수 없는 것들과 마주 서서 언어를 생략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내 삶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 사소하게 가만히 들여다볼 마음을 얻었다. 그 가운데서도 먼저 내 눈에 띈 것은 아픈 사랑과 마음들이었다."

[북데일리] 저자 김기연의 말이다. 그는 <레코드를 통해 어렴풋이>이라는 책에 이어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산문집<삶은 풍경이라는 거짓말> (맥스미디어.2014)을 냈다. 책은 자연과 마주한 내면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거기엔 환호성, 여행 특유의 설렘은 없다. 대신 그는 풍경 속에 사람의 일과 사랑, 자신를 던져 놓고 삶을 이야기한다. 
 
 "느리게 내려오니 마주치는 것이 많다. 바위 사이에 핀 꽃, 무더기로 돋아 수군덕거리는 풀들, 지난 매미가 벗어놓고 간 허물, 아직도 생의 방향을 찾지 못해 여울목에서 뱅글뱅글 도는 낙엽, 흙 밖으로 제 그리움을 내보이고 있는 뿌리, 풀숲에서 생의 가려움을 부스럭부스럭 긁는 소리, 삶이 사람 같다고 대만 남긴 채 흔들리는 마른 풀의 긴 그림자,.."(45쪽)
 
 작가는 모든 것을 보듬어 안은 산을 바라보며 자신의 그렇지 못함을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자기 밖의 삶을 온전히 인정하고 짐승들, 풀, 나비, 안개, 비, 바람, 등 을 숙명처럼 끌어안는 산처럼 살고 싶어 한다. 그는 한편 풍경을 그냥 바라보지 않는다.
 
 "나무는 이미 선택과 집중을 몸으로 체득했다. 봄이면 무수한 꽃을 피우지만 시련과 단련의 시기를 거쳐 약한 꽃과 열매는 가차없이 버린다. 그렇게 차별 없이 솎아서 꽃과 열매의 촘촘한 사이를 넉넉하게 만든다. 아프지만 버려야 하는 결단이 필요하단 걸 나무는 언제쯤 알았을까?"(33쪽) 
 
 작가는 풍경 속 나무를 우리 삶속으로 끌고 들어와 절묘한 사유를 끌어낸다. 사물의 본질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에 치환한다. 살아가면서 선택이란 불가피한 것. 하나를 고르면 다른 하나를 버리는 일이기도 하다는 말에 완곡한 삶의 자세를 읽는다. 
 
 "아름답게 짜 맞춘 문살에 창호지를 바른다. 그 연약한 종이를 단단하게 만드는 건 문살이다. 그렇게 하나가 된 문살문은 안과 밖으로 통하는 통로면서 안을 가리고 지켜낸다. 제 아무리 고운 얼굴이라 하더라도 제 역할을 못하면 허랑인 문일 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매년 창호지를 갈랐던 것은 고운 얼굴과 그것이 행하는 역할을 모두 고려했던 것이었다."(209쪽)

 책에는 송광사 대웅보전 문살문의 빛바랜 사진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그것을 은은하고 멋스러운  기품 있는 사람을 대하듯 한다. 빛바랜 문살문에서 봄이면 온 가족이 창호지를 바르던 때를 기억해 낸다. 그런가하면 바다에 서 있는 등대를 보고 아버지를, 목련꽃을 촛불로, 봄동에서 단단한 정신을, 양파 추수를 보며 인생이 맵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 이 책은 여행여정이나 풍광을 담은 에세이와는 사뭇 다르다. 찰나를 사진에 담아 ‘느리고 습습한’마음의 현絃을 건드린다. "사소한 일에 지문처럼 지워지지 않는 삶의 이유가 있다면 그건 운명" 이라는 말처럼 책장 어디를 펼쳐도 전혀 사소하지 않고 다분히 시詩적이다. 마음을 평안으로 이끄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저자 김기연은 바람 따라, 세월 따라 흘러가고 싶은 카피라이터이자, 아트디렉터이며 때로는 캘리그래퍼이기도 하다. 글을 쓰라는 바람의 전갈을 받았고, 여행을 하라는 꽃의 부름을 받았다.

피는 꽃에게 낭만을 얻었고, 지는 꽃에게 눈물을 받았다. 때로는 음악이 눈물을 다독여주기도 했으며, 달콤한 입술보다 유혹적이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는 마법의 열쇠를 찾아, 이리로 저리로 흘러 다닌다. 존재하는 것이 제각각인 듯 보이지만 결국 언젠가는 한자리에 모여 소통된다고 믿는다. 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는 순수함과 엉뚱함을 지녔다. 때로는 밥하는 남자처럼 따스하고 때로는 꼬투리 잡는 남자처럼 차갑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에 드리워진 삶의 내면과 마주하기 위해 풍경에 자신을 던져놓는다.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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