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마음을 재는 온도계
시는 마음을 재는 온도계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9.05 08: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태준 시모음 <가만히 사랑을 바라보다>

" '짐작'이라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요량, 어림, 대중, 이것이 짐작이라는 말에 둘레이다. 짐작이라는 말은 어떤 커다란 윤곽처럼 느껴진다.(중략)짐작으로 살면 우리는 행복하리니, 넉넉하고 유순한 마음으로 살 수 있으리니. 짐작으로 살면 큰 이해와 사랑도 도달하리니. 세상의 오해가 사라지리니. 짐작으로 살면 아득하게 멀리 흘러갈 수 있으리니. 시를 읽는 기쁨 가운데 하나는 '짐작'의 사용량을 늘리는 일이 아닐까 한다."-서문에서
 
[북데일리]시인이 독자가 되어 읽는 시는 어떨까. 여기 문태준 시인이 사랑한 시들을 모아 책<가만히 사랑을 바라보다>(마음의숲.2014)으로  펴냈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각 장마다 15편에서 18편의 시편들이 '나'에서 시작하여 '너로' 다시 너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사물'로 옮겨 간다. 저자가 읽어주는 사랑의 마음자리를 들여다보자.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흰밥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전문

​ 가만히 '나'를 먼저 바라본다는 건 나를 앎으로써 타인을 공감하고 세상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일쯤 될까. 저자는 한 공기의 밥을 바라보고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는 시인을 본다. 저자는 이별과 무너짐, 사물의 변화에서 다음과 같은 경구를 들려준다. "물은 흘러 언제까지 차지 않고, 타오르다 머잖아 꺼지는 불꽃. "찰나생멸刹那生滅 하니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있다."

 "당신이라는 수면 위/ 얇게 물수제비나 뜨는 지천의 돌조각이란 생각/ 성근 시침질에 실과 옷감이나 당겨 우는 치맛단이라는 생각/ 물 컵 속 반 넘게 무릎이나 꺽인 나무젓가락이란 생각/ 길게 미끄러져버린 검정 미역 줄기란 생각/ 그러나/ 봄 저녁에 듣는 간절한 한마디/ 저 연보라빛​ 산벚꽃 산 벚꽃들 아래/ 언제고 언제까지고 또 만나자/ 온통 세상의 중심이게 하는."(김경미,'다정에 바치네') 전문

 "들꽃도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란 나태주 시인의 시구처럼 들려주는 시들은 느리고 낮지만 '언제고 언제까지고 또 만나고 싶게 만든다.  

 "멀리서 당신이 보고 있는 달과/ 내가 바라보고 있는 달이 같으니/ 우리는 한 동네지요/ 이곳 속 저 꽃/ 은하수를 건너가는 달팽이처럼/ 달을 향해 내가 가고/ 당신이 오고 있는 것이지요/ 이 생 너머 저 생/ 아득한 한 뼘이지요/ 그리움은 오래되면 부푸는 것이어서/ 먼 기억일수록 더 환해지고/ 바라보는 만큼 가까워지는 것이지요/ 꿈속에서 꿈을 꾸고 또 꿈을 꾸는 것처럼/ 달 속에 달이 뜨고 또 떠서/ 우리는 몇 생을 돌다가 와/ 어느 봄밤​ 다시 만날까요."(권대웅, '아득한 한뼘')전문

 저자에 따르면 사물을 바라볼 때 내적인 마음과 외적인 사물을 합쳐 우리는 세상을 본다. ​이 시를 비롯하여 4장 15편의 시는 나와 너를 거쳐 세상으로의 여행 안내자역할을 톡톡히 한다.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시는 자신의 마음자리를 살피는 도구라고 했다. 마음은 가만이 있으면 자꾸 어디론가 가기에, 그러면서도 몸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리는 일은 결코 쉬지 않다.

 책에 실린 시편들은 소나기처럼 격정적인 사랑이 아니다. 그가 시의 해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만히 들여다보고 '짐작'케 하는 사랑 시들이다. 사람의 마음도 우리가 속한 자연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깜냥이 생기듯   잠시 쉬어가게 하는 휴식같은 시집이다. <장맹순 시민기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