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명문장] 슈크림처럼 녹는 장어의 맛
[책속의 명문장] 슈크림처럼 녹는 장어의 맛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8.12 0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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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PD의 미식 기행, 여수>중에서

 [북데일리] 말하고 싶은 걸 정확하게 표현하는 글이 좋은 글이다. 물론 쉽지 않다. 일반적인 정보나 지식이 아닌 풍경이나 맛은 더욱 그렇다. 맛은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맛 기행 <세 PD의 미식 기행, 여수>(민음사. 2014)는 아주 좋은 예다.

 장어 살을 데치면 연분홍빛이 크림색으로 변한다. 살이 부풀면서 촘촘하게 난 칼집이 벌어진다. 납작했던 살점은 밖으로 휘면서 꽃봉오리처럼 동그래진다. 층층이 벌어진 살집이 꽃받침 위에서 갈라진 꽃잎처럼 보인다. 이때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된다. 꽃잎이 시들기 전에, 아니 장어 살이 더 굳기 전에 재빨리 건져서 입안에 넣어야 한다. 그때의 느낌이란!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슈크림이 입안에서 녹는다고 할까. (80쪽)

 연한 주황색의 연어 살, 붉은 참치 살과 달리 삼치 살은 은은한 연분홍빛이다.  지방이 많은 배 쪽으로 갈수록 분홍빛이 진해진다. 살점과 살점 사이의 결이 굵고 그 사이도 넓어서 시원시원해 보인다. 삼치 뱃살 한 점을 집어 입안에 넣어 봤다. 아직 냉기가 남아 있다. 서양식 얼음과저 셔벗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처럼 혀와 입 안벽이 살짝 얼얼하다. 잠시 후 혀 위에서 체온에 데워진 뱃살의 지방이 풀리기 시작한다. 고소하게 녹아내리는 살 조각, 미지근하게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서 용해되는 버터 같다. (130쪽)

 굴을 꿀이라 하니 이런 비유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직화 구이는 산에서 바로 딴 석청을 먹는 것 같다. 벌집의 밀랍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치아 사이에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있지만 맛은 강렬하다. 찜은 잘 걸러 낸 벌꿀 같다. 입안에서 더 부드럽게 부서지고 풍부한 맛이 퍼져 나간다. 껍데기 가루가 살에 붙은 야생의 맛을 즐기고 싶다면 직화 구이를, 좀 더 점잖게 즐기고 싶다면 찜을, 카사노바의 입맛을 따라가고 싶다면 생굴을! (151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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