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앞 노숙자들이 본 세상
역 앞 노숙자들이 본 세상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7.30 0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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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중앙역>

 ‘이게 젤 밑바닥인 거 같지? 아니, 바닥 같은 건 없어. 바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바닥으로 떨어져 버려.’ (161쪽)

 [북데일리]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김혜진의 <중앙역>(웅진지식하우스. 2014)는 역 주변 노숙자의 삶을 다룬다.

 다른 삶을 위해 웃음과 기대를 안고 움직이는 사람들, 잠시 이별을 위해 머무는 곳, 중앙역에서 그들과는 다른 생존을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자인 ‘나’는 중앙역에 모여든 노숙자 중 하나다. 작가는 왜 그가 이곳에 왔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소설은 중앙역 안과 그들을 바라보는 바깥의 시선으로 나눠진다. 안에 있는 화자인 ‘나’ 와 그를 바라보는 시선 말이다. 뉴스를 통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사람들의 모습을 픽션으로 만나는 일은 여전히 힘들다. 김혜진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시선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의 사랑, 그들의 희망, 그들의 고통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의 오만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시선에 화자인 ‘나’는 화가 난다. 가방을 훔친 여자를 사랑하는 일에 대해, 함께 꿈을 꾸는 일에 대해 질타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참을 수 없다. 젊음이라는 이유를 들어 광장을 벗어나 쪽방을 얻어 새롭게 시작하라는 조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남편과 자식이 있는 알콜중독자로 복수가 차오르는 나이 많은 여자와 살고 싶다. 어쩌면 그들의 말대로 ‘나’는 아직 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나’에게 여자마저 없었더라면 삶은 지속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벼랑 끝에 놓인 사람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경찰서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울타리는 너무 빈약하다. 강자에게 유린당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법자가 되어 살아야 한다. 그래서 폭력에 앞장서고, 자포자기의 삶을 산다. 우리는 알면서 외면한다. 누군가는 그들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내 일이 아니니까. 시작을 위해 시도를 반복하면서도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난 그들이 느낄 거대한 공포를 알지 못한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감옥을 나와 결국 자살을 선택했던 사람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나는 세계가 남김없이 무너지는 장면을 상상한다. 모든 게 공평하게 황폐해지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이 절망감과 무력감을 떨쳐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소리 지르고, 고통을 느끼고, 죽어가면서, 우리도 이렇게 살아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무슨 상관인가. 여자와 나는 이미 다 무너졌는데. 이토록 또렷하게 망가진 서로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데. 우리는 자신을 숨기고 가장할 얇은 거짓 하나조차 걸칠 수 없다. 발가벗은 진실은 언제나 서로를 향해 각을 세우고 할퀴고 흉터를 남긴다.’ 167쪽

 중앙역은 어디에나 있다. 작가는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주변이 풍경을 단문을 이용한 최대한의 절제로 시작을 위한 시도의 세찬 몸부림을 그려낸다. 그래서 더 아프고 고통스러운 소설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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