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장정일
26. 장정일
  • 북데일리
  • 승인 2007.03.0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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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와 떠도는 사원>(웅진지식하우스. 2006)

[북데일리] 우리시대 ‘독서고수’로 소설가 장정일을 거론하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지 싶다. 중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지만 학업의 공백을 독서로 채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니, 채우고도 남았다는 표현이 옳겠다.

그가 쓴 6권의 <독서일기>는 웬만한 독서광도 혀를 내두를 정도. 장르를 넘나드는 독서편력과 날카로운 해석이 읽는 이의 기를 죽였다. 본인의 자부심 역시 대단하다. 다음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책 속 한 대목.

“내가 읽지 않은 책은 이 세상에 없는 책이다. 예를 들어 내가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내가 읽어보지 못했으므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톨스토이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그 책을 읽어야 한다. 내가 한권의 낯선 책을 읽는 행위는 곧 한권의 새로운 책을 쓰는 일이다.”

<독서일기>가 출간되고 꽤 시간이 흘렀지만 생각엔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장정일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책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은 이음동의어”라고 설명했다. 작가에게 독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행위라는 말. 하지만 가끔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마저 든다.

“제가 저를 놓고 볼 때 이해가 안 되기도 해요. 작가는 ‘내 글’을 써야 하는데 주구장창 ‘남의 글’만 읽고 있으니... 지금 뭐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웃음)”

그럼에도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읽지 않으면 정치권력, 기업문화에 쉽게 이용당할 수 있어서다. 장정일은 그들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머릿속에 수많은 지식을 쌓아두고 있다.

독서고수가 인정하는 작가라면 그 역시 만만치 않은 고수일터. 장정일이 좋아하는 저자는 누구일까. 그는 박노자, 김용규, 노암 촘스키를 꼽았다.

특히 김용규에게 보내는 지지는 열광적이다. 한 마디로 ‘광팬’.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이론과실천. 2004), <다니>(지안출판사. 2005),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웅진지식하우스. 2006), <알도와 떠도는 사원>(웅진지식하우스. 2006)... 김용규의 저서 대부분이 독자에게 권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중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는 문학을 철학의 관점에서 조명함으로써 삶을 ‘철학’하게 하는 독특한 교양서다. 만남, 사랑, 성장, 자기실현과 같은 개인적 질문부터 유토피아, 인간공학, 사회공학 등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다양한 문제까지 아우르고 있다.

장정일은 <알도와 떠도는 사원>에 대해서도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굉장한 책이 있다는 소문만 듣다가 최근에야 접하게 됐단다. 그는 소설을 읽고 장문의 독후감을 작성했다며 일부를 공개했다.

“이 소설은 지식 소설, 철학 판타지 등으로 불린다. 하지만 모두 알듯이 그것들은 이 작품에 대한 올바른 장르 규정이 아니다(그러나 이 단언은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 질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다. 규정 여하에 따라 또 새로운 글쓰기에 따라 장르는 얼마든지 새로 만들어 질 수 있다).

성장소설 또는 독일식 교양소설이 어느만큼 과도한 판타지나 지식을 수용할 수 있는지는 계량화할 수 없지만, 이 작품을 읽으며 얼핏 들었던 생각은, 모든 성장소설 내지 독일식 교양소설은 판타지 소설의 성격과 지식 소설이라 할만한 요소를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책벌레들이 가장 궁금해 할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바로 장정일이 오래시간 체득해온 독서 노하우. 먼저 그는 중요한 구절에 밑줄을 긋거나 포스트잇을 붙이지 않는다.

“중요한 부분은 읽는 즉시 내용을 파악하고 외워야합니다. 별도로 표시하는 건 도리어 기억력을 감퇴시키는 일이에요. 내가 아니라 책이 기억하게 되는 거죠.”

책을 효율적으로 읽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써봤던 그의 말이니 믿어도 될 듯하다.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독서법은 속독이다. 처음엔 대충 훑어 내려가고, 다시 한 번 읽었을 때 정확한 내용 파악이 가능하다고. 사실 방법을 고안한 이는 따로 있다. ‘비평계의 황제’라는 별명을 지닌 독일문학비평가 마르셀 라이히 라니츠키가 그 주인공. 5,6년 전 라니츠키의 내한 강연에서 이를 듣고는 곧바로 따라했다.

“앞으로도 더 좋은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나갈 겁니다.”

최근 인문학 에세이 <공부>(랜덤하우스코리아. 2006)를 펴내며 또 한 번 방대한 독서량을 과시한 장정일. 그의 독서열은 타오를 뿐 꺼질 줄 모른다. 그가 진정한 ‘독서고수’인 이유다.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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