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지식] 사진찍을 때 한쪽 눈 감는 이유
[책속의 지식] 사진찍을 때 한쪽 눈 감는 이유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4.07.16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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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물들>중에서

[북데일리]  곰곰 생각해 보면 자신의 인생에서 의미 있는 사물들이 몇 가지 쯤은 있을 것이다.

<시인의 사물들>(한겨레출판. 2014)은 52명의 시인이 특별한 사연이 있는 사물에 대해 쓴 에세이집이다. 시인 정해종은 가난한 복학생 시절 최민식의 사진집 <이 사람을 보라>를 뒤적이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종로3가 카메라 골목으로 달려가 캐논 AE-1을 집어들었’다. 카메라 값으로 지불한 돈은 학비였다. 그는 사진가를 꿈꿔본 적도 없고, 단지 자신이 포착한 ‘순간의 표정과 풍광, 신통방통한 작은 기계를 통해 연출한 세계의 모습에 흥미를 느낄 뿐'이라고 전한다.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것은 마음의 눈을 위해서이다’라고 말한 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다. ‘일상 속에는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결정적 순간이 어디에나 있다. 이 세상에 결정적 순간이 아닌 순간은 없다’라고도 덧붙였다. 감긴 한쪽 눈이 마음의 눈을 연다. 그리고 그 눈을 통해 삶을 발견하고 변화시키는 순간을 포착한다.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그 비의를 드러내는 결정적 순간, 바로 창조자가 되는 순간이다. 지겹도록 변화하지 않는 고집불통의 세계는 카메라 앞에서 무력해진다. 적어도 카메라를 들고 있는 순간만큼은.

뷰파인더에 한쪽 눈을 대는 순간 나 또한 빛의 지배자가 된다. 구도와 광량, 심도와 셔터 속도의 결정이 오직 내 손에 달려 있으니, 나는 세계를 어둠의 상자 속에 넣어 가둘 수도 있고 폭발하는 빛에 송두리째 녹여버릴 수도 있다. 시간의 흐름을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여 흐물거리게 할 수도, 현실에선 인지할 수 없는 찰나에 고정시켜 버릴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얻어진 결과에 대해 책임질 필요는 없다. 창조자의 전능은 딜리트 버튼 하나로 모든 걸 날려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파인더에서 눈을 떼는 순간 세계는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제 방식대로 존재할 것이며, 어차피 나의 창조물은 하나의 이미지로 남을 뿐이기 때문이다.“ (p.144~p.145)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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