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나팔꽃 속 '죽음의 비밀'
노란 나팔꽃 속 '죽음의 비밀'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7.0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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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몽환화>

 [북데일리]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추리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몽환화>(2014.비채)는 특이하게도 두 개의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프롤로그가 둘이듯 내용을 이끌어가는 목소리도 둘이다. 수영 유망주였지만 심각한 공황장애로 수영을 포기하고 평범한 여대생이 된 리노와 원자력을 공부하는 청년 소타다. 소설은 밴드를 하는 리노의 사촌 나오토의 자살과 연이어 강도에게 살해당한 할아버지의 범인을 찾으며 밝혀지는 노란 나팔꽃에 대한 이야기다.

 리노의 할아버지 슈지는 꽃을 개발하는 일을 하다 퇴직했다. 그 이후로 꽃을 기르며 지내왔고 리노가 꽃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도왔다. 돌아가시기 전 슈지는 리노에게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란 꽃 사진을 보여주는데 놀랍게도 슈지가 죽은 후 그 꽃의 화분이 사라진다. 그 꽃을 블로그에 올리자마자 사진을 삭제하라는 요스케와 만난다. 석연치 않는 느낌을 받은 리노는 그의 집을 찾아가고 동생 소타에게 형사라는 사실에 놀란다.

 리노에게 그 간의 일을 전해 들은 쇼타는 어린 시절 온 가족이 나팔꽃을 보러 다녔던 일을 떠올린다. 둘은 슈지의 죽음과 노란 나팔꽃의 비밀에 대해 접근한다. 그 꽃은 몽환(夢幻)로, 씨를 먹으면 환각 상태에 빠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밴드 활동을 하던 나오토가 왜 자살을 이르렀는지 알게 된다. 요스케가 사진을 삭제하라고 했던 이유도, 아름다운 꽃의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환화가 희귀한 꽃이 아니라 에도시대( 江戶時代)로 거슬러 올라가면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환각 기능으로 무자비하게 살인을 행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사라진 꽃이 아니라 강제로 사라지게 했다는 놀라운 사실도 함께 말이다.

 “어떤 꽃이 신에게 허락받은 겁니까?”

 “그건 모르네. 생존을 계속하면 허락받은 것일까. 있는 것은 있는 대로 둔다는 게 내 생각이야. 거꾸로 말하면 사라지는 것은 사라지도록 둔다는 거지. 어떤 씨앗이 사라졌다는 것은 사라질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야. 노란 나팔꽃이 사라진 것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야.” 219쪽

 <몽환화>가 기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 차별화된 이유는 추리라는 형식을 빌어 역사, 성장, 소통,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다. 수영 선수였던 리노를 항상 부러워했던 나오토, 출생의 비밀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자신이 공부하는 원자력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소타, 수영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리노, 형사 집안의 장남으로 몽환화에 대한 비밀을 지켜야 했던 슈스케. 그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다만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니, 자신의 마음을 감추는 일이 서로를 위하는 거라고 믿어서다. 그러나 삶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몫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몫이 있다. 어쩌면 히가시고 게이고가 유독 많은 인물을 등장시킨 건 함께 하는 삶을 말하기 위함은 아닐까.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소타가 말했다. “그냥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해. 그게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420쪽

 소타가 받아들인 삶의 몫은 개인의 것이자 모두의 것이다. 우리 삶 곳곳에 빚이라는 유산은 존재한다. 다른 이름, 다른 형태로 말이다. 삶은 멈추지 않으니 누군가는 유산을 이어야 하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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