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할 것 없는 삶에 대한 특별함
특별할 것 없는 삶에 대한 특별함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6.29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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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 시집<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북데일리] 펭귄의 천적은 바다표범이라는데/바다속 사정이 궁금한 펭귄들/서로 물에 먼저 들지 않으려/불룩하게 눈치만 살필 때/한 놈이 슬쩍 다른 놈을 민다/얼떨결에 무방비가 틱 미끄러져 든다/그때 내가 그녀를 밀었을까/그녀는 밀렸다 생각했을까/시달리다보면 누굴 밀었다는 착각에 들고/정말 밀었다고 믿기에 이른다/펭귄의 뱃속엔 물결과 물결이/제 안엔 파도치는 밤과 낮이/천적과 천적으로 살아있는 동안/극과 빙하는 다 녹을까/그럴까/궁금하다/그때 빠져든 펭귄은 실족이었다 말을 했을까.('펭귄시각')전문

​ 누군가의 슬쩍 이란 행위는 당사자에겐 치명적일 수도 있는데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건 왜일까. 슬쩍한 누군가는 입다물고 가만 있는데 마음 따듯한 시인은 되레 마음이 불편하다. 혹시 자신도 모르는 행동이 다른 이를 다치게 한 건 아닐까싶어서다. 약자에 편에 서서 더 좋은 관계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2014)에서 여러가지 무늬로 삶을 돌아보게 한다.

 공원 안에 있는 살구나무는 밤마다 흠씬 두들겨 맞는다/이튿날 가 보면 어린 가지들이 이리저리 부려져 있고/아직 익지도 않은 열매가 깨진 채 떨어져 있다/ 새파란 살구는 매실과 매우 흡사해/으슥한 밤에 나무를 때리는 사람이 많다/모르고 때리는 일이 맞는 이를 더 아프게도 할 것이다/키 큰 내가 붙어 다닐 때 죽자고 싫다던 언니는/그때 이미 두들겨 맞은 게 아닐까/키가 그를 말해주는 것도 아닌데/내 평생 언니를 때린 건 아닐까/살구나무가 언니처럼 무슨 말을 하지 않았지만/매실나무도 제 딴에 이유를 남기지 않았지만/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한쪽은 남기지 않았지만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한쪽은 아프고 다른 한쪽은 미안했던 것/나중 먼 곳에서 어느 먼 곳에서 만나면/우리 인생처럼/그 나무가 나무를 서로 모르고.('나무가 나무를 모르고') 전문

 이 시를 읽으면 막스 피카르트의 말(218쪽)이 떠오른다."자신의 시에서 시인은 현실을 경험한다. 시는 현실에서 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에서 출발하여 현실로 진입한다. 높은 것이 낮은 것을 향해 현실로 가라앉는다." 매맞은 살구나무를 보며 자신의 경험을 조심스레 들춰내는 선한 마음이 시인의 천성은 아닐까. ​

​ 그날따라 정신없이 웃었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래도 되는지/옆을 돌아 보았어요/예의가 아니었어요/예의는 지나치면 안되는 것이라고/ 너무 가두어도 어긋나는 것이라 하니/예의는 말할 수 없는 거겠어요/아무도 웃지 않을 때 웃는 건/그야말로 예의가 아니었죠/하필 그날, 왜 옆에 있던 대형 유리가 깨졌던 걸까요/미안해요 너무 크게 웃어서/슬픈 다른 사람 생각을 못해서/파편들은 극명하게 아픔을 말해주었어요/웃음을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는 듯/아마 그날/우리는 웃지 않아야 할 때 크게 웃었던 거지요/웃다가 울었던 거지요.('예의')전문

 한 편의 시가 시인의 전부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시 자체가 시인이란 생각을 들게 한다. 사려 깊고 선한 마음과 일상을 성찰로 맞는 모습을 보며 이전 시가 궁금하고 앞으로 나올 이후의 시가 궁금해진다. 어떤 시인이 그렇게 노래했던가. '한 사람이 내게 온다는 것은 그가 속한 세계와 과거와 미래가 한꺼번에 오는 것'이라고.

 이규리 시인은 1955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계명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199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앤디워홀의 생각>​,<뒷모습>이 있다.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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